K야. 오늘 날씨가 추우니까 네 코도 빨개지고 훌쩍이며 보도블록을 밟았겠지. 나는 오늘 마음이 아파. 내가 너에게 도움이나 기쁨은커녕 짐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기 때문에 나는 너를 떠날 채비를 해왔고 오늘 용기를 내서 그 문을 열었어.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너에게 도와야 하는 사람이고 짊어져야 하는 아이 같아서 너의 괴로움을 더하기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버린 거야. 나는 말을 늘 빙빙 돌렸어. 내가 K를 사랑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그 애가 아는 것도 두렵고 모르는 것도 두려웠기에 무엇 하나 결정하지 못한 나는 지금 벌을 받는 거야. K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두 번째로 물어보았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답을 정했어. 나는 너에게 힘이 될 수 없다면 너로 하여금 나와 함께 잃어버린 나의 동물을 찾으러 가길 그만하도록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다짐했어. K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것보다 K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 내겐 더 힘들고 아픈 일이기에. 무엇 하나 지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기에.
애달픔이라는 감정이 있다. 안쓰럽고 딱하고 애잔한 그런 마음 말이다. 나는 K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아이에게서 슬픔보다 짙고 아픔보다 달콤한 애틋하고 안쓰런 냄새를 맡는다. 포근하고 따스했던 향기는 이제 짜지만 달달한 눈물의 맛으로 변하여 나를 흔든다. 나 네가 왜 이렇게 아플까?
때는 K의 눈물을 처음 들었던 날이었다. 내겐 K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실체가 늘 미궁이었다. 그렇게 네 아픔을 알면 알수록 나는 혼자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널 되려 귀찮고 답답하게 만드는 행동을 으레 해댔다. 나는 그렇다. 네가 네 소중한 새를 잃어버린 날, 파랑새 혼자만이 네 새장에 남게 되던 날, 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게 너무 찢어지도록 아프고 또 아프다. 그로 인해 네가 흘렸을 눈물도, 투정 부릴 줄 몰라 세웠을 자존심도, 결국엔 꺾여버리고 말았을 고집도, 세찬 빗줄기 앞 홀로 서있어야 했을 네 외로운 등도 왜 그리 눈물이 나고 또 쓰린지 마치 네가 내 마음에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것만 같은, 네가 꼭 내 잃어버린 그 작은 동물인 것만 같은 착각을 마음껏 하며, 내가 네 마음에서 날아갔다가 다시 제 집을 찾아 돌아온 또 다른 새인 것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살살 피어올린다. 어림없는 소원들이다.
그래 오늘 밤만큼은, 오늘이 너무 늦었다면 내일 밤 하루 정도는, 아니 어떤 날 이래도 좋으니 그날 딱 하루만큼은, K가 미치도록 사무칠 그 아이의 외로움도 두려움마저도 마치 생전 겪어본 적 없는 갓난아기처럼 잠시만 니라도 깨끗하게 지워진 밤이 되었으면, 그런 밤으로 K의 시간아 잠시동안만 흘러주었으면, 그렇게 해주십사 난 또 으레 여느날처럼 기도를 해둔다.
그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도 당연히 있지.
K가, 그리고 내가, 어떤 모양이더라도, 각기 자기의 삶과 또 자기의 삶에 주어진 축복을 놓지 않고 꼭 쥐고 영원까지 뛰어들 수 있길 빌어주는 것.
간절히. 그래 아주아주 간절히.
온 진심으로 빌어주는 그것.
K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나를 위한 세상 가장 이기적인 기도문을 외는 어느 한 겨울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