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내게 늘 무언갈 던졌다.
내게 K는 죽어있는 나를 더 나아지고 싶게 하는 사람이고, 겉이 딱딱한 바게트 빵 같은, 그런데 속은 별처럼 보드라운 예쁜 것을 혼자 몰래 내려다보며 살고 있는 낭만적인 소년이다. 작은 것들을 지키고 슬픔을 알지만 커다란 포부도 잃지 않은 미련한 등대지기이다. 마침 오늘도 그가 던진 것이 도착했다.
K의 얼굴은 주위에 비해 창백했으나 곳곳이 노르스름하게 제 나이만큼 익었으며 날렵하고 얄팍한 선을 만드는 이목구비에 비해 단단하고 묵직했다. K 속에는 새가 한 마리 살았다. 새는 K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K의 눈을 통해서만 그 새를 볼 수 있었는데, K는 새를 잘 보이지 않았고 새도 세상을 둘러보기보다 그 안에서 은밀히 날아다니길 즐겼다. 나는 그 새를 딱 한 번 보았다. 종종 걔의 곁에 있을 때 K는 일부러 목을 눌러 낮고 스산한 소릴 냈고 K는 늘 깃털 하나라도 빠질새라 새를 단속했다. 그런 K가 처음으로 내 방 깊숙이 들어와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날이 있는데, 그날 처음으로 K의 새장 문이 열렸고 나는 파란 털의 작은 새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그때 새를 만나고 반갑다고 인사나 해줄걸 그랬나, 아쉬워하기도 멋쩍은 것은 새와 내가 마주친 순간 이름도 묻지 못하고 성급히 방 문 밖으로 도망친 것이 K도 파란 새도 아닌 나였기 때문에 나는 K에게 새의 존재를 아는 채 할 수가 없다. 새가 참 예뻤다. 보고 싶었었는데.
나는 K를 보고 싶어 한다. K는 이젠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K가 늘 바쁜지, 밥을 먹었는지, 좀 전에 하려다 만 말이 무엇인지, 어쩌다 요즘은 그렇게 자기 이야길 잘하는지, 내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히도 모르는지 많이 궁금하다.
시간은 6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처음 K는 다듬어지지 않은 향을 풍기며 함께 있는 공간 맨 뒤 꼭짓점 자리에서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그 안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이들 중 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K는 그때도 내게 희한한 사람을 구경하는듯한 시선과 의아함을 던졌다. 과거로, 더 과거로 갈수록 K가 던진 것들은 아주 더욱 늦게 내게 이르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 아이도 알았을까, 자신도 별생각 없이 던진 것들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몇몇 포물선은 비슷한 궤도를 그려냈고 그중에서도 아주 우연한 경우의 수에 의해 돌 맞은 개구리가 생겨나버렸다는 것을 몰랐을까.
몰랐었다. K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생활 반경뿐 아니라 관심을 두는 범주 안에도 들지 않았으니까. 그저 흝어보는 주변환경 안에서 어쩌다 한 번씩 눈에 걸리는 행인이었다.
K에겐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일이 많다.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의 관할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난 K가 좁은 문 틈 사이로 흝어보는 주변환경 안에서 어쩌다 한 번씩 눈에 걸리는 행인이었다. K는 나에게도 어려운 사람이었으니 지금 생각에선 차라리 그때와 같이 우리가 평행한 방향으로 각기 갈 길로 나아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K는 밥을 맛있게 잘 먹었고 말을 잘했으며 남을 설득하고 깨우치는 일에 능통했다. 나는 내 집에 무슨 동물을 키우다가 잃어버렸는지 기억과 함께 동물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종종 길거리에 붙은 실종 아동이나 실종 동물을 찾는 전단지를 볼 때마다 기억도 나지 않은 잃어버린 나의 어린 동물을 그리워하며 울었는데, K는 아무 단서 없이 울며 동물을 찾아 헤매는 나를 도와 우리는 함께 나의 어린 동물을 찾으러 갔다. 그 길목마다 붙은 전단지를 떼버리기도 모으기도 하고 전단지 속 그림과 나의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며 동물 한 마리를 찾으러 여기로 저기로 그렇게 들락였다. 나는 실수가 잦았고 K는 타박을 할지언정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린다거나 뭔갈 다 쏟아 엎어버린 나를 모른 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K에게 네가 꼭 나의 아빠 같아, 너 왜 자꾸 내 아빠인 양 굴어? 방금 그 말 정말 우리 아빠 같았어, 따위의 말을 자주 했다. K는 딱딱하지 않고 보드라운 아이였다. 심지어 따듯하기까지 했다.
하루는 K와 함께 언제나처럼 나의 어린 동물을 찾으러 가고 있었다. 나와 K와 K의 파랑새는 내일 그 길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갔지만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가더라도 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파랑새와 K와 달리 나는 집을 나간 내 한 마리 동물에 대한 생각이 아닌 K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느새 너무 고마운 사람이 되어버린 아이와 새가 어느 날 부쩍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어떤 단단 마음가짐으로 이들을 덤덤하게 보내주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 생각 속에서 몇 번씩이고 헤어짐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제는 K가 처음 나에게 던졌던 것이 무엇이었으며 지금 나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집어 들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K는 어쩌면 한 번도 내게 도착할 것을 염두하고 뭔갈 던진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 내 잃어버린 동물이 K와 살고 있는 새와 닮아서 내가 K의 허리춤의 옷깃을 쥐며 나의 새를 찾기를 도와달라고 매달렸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수백 번의 시도 끝에 한 차례 겨우 만난 양 끝으로부터 시작된 포물선들처럼 잠시 이렇게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참 슬픈 사실이 될 것이다. K의 허리춤을 붙잡은 것도, K에게 돌을 한 던져보라고 쥐어준 것도 실은 오로지 내가 만든 작은 그림 한 폭이라는 사실은 참 슬프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나에겐 예쁘기만 한 그림이다.
K와 나는 내일도 함께 전단지를 따라 집을 나간 나의 어린 동물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K와 같이 걸을 때는 K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별같이 찬란한 그 애의 속이 곁에 있을 때 파랑새의 노래와 함께 내게로 솔솔 풍겨온다. 항상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K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