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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견 Jul 09. 2022

수선화

메아리 치는 잔인한 사랑

물의 요정 리리오페는 홍수에 휘말려 강의 신 케피소스와 만나고 곧 아이를 갖게 된다. 아름다운 아이를 낳게 된 리리오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운명을 알기 위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게 된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 것이다."


리리오페는 다른 요정들에게 아이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부탁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수선화를 뜻하는 나르키소스(Narkissos)이다. 그리스어로 ‘나르스(narce : 마비)/ 나르케(narke : 마취, 혼수)’가 어원이다. 누구나 나르키소스를 보면 '망연자실'하여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였다.


아름답고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한 나르키소스가 강가를 거닐 땐 늘 강의 요정들이 따랐고 어느새 추종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흔한 요정들의 구애 따위는 무시하기 일쑤였고, 상처받는 이들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감각'은 그의 성격이 되었다.


그 가운데 숲의 요정인 '에코(Echo)'가 그를 사랑하게 됐는데,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요정들 사이에서 말을 전하는 일종에 수다쟁이였다. 어느날 제우스의 부인 헤라가 요정들과 노닥거리는 남편을 못마땅해 그와 요정들이 노니는 현장을 찾아내려 했다. 이때 에코가 수다를 떨며 헤라를 붙아두었기에 제우스와 요정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헤라는 그 벌로 에코에게 자기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남의 말을 메아리치게 되는 저주를 내렸다.


때문에 그녀는 나르키소스에게 사랑고백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언젠가 나르키소스가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다.

말을 따라 하는 저주를 받은 에코


어느 날 에코가 몰래 숨어 나르키소스를 바라보는데 인기척을 느낀 나르키소스는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지금껏 기다려온 일을 고대하며 셀레이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부디, 나르키소스가 나를 사랑한단 말을 하게 해 주세요...'


"누구시오?"


그러자 에코가 그 말을 따라 했다.


"누구시오?"


"이리로 나오시오."


역시 그녀는 그의 말을 메아리쳤다.


"나와 함께합시다."


그녀는 반가운 나머지 나르키소스에 안기려 달려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처음보는 그녀에 놀라 황급히 떨쳐내며 말했다.


"네 깟게 감히! 안아주세요?"


"안...아...주세요.."


"그래? 너를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러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죽... 어... 버리지"


그것이 그녀의 사랑에 되돌아온 답이었다.


사랑하던 나르키소스의 매몰찬 비하에 마음의 상처받은 에코는 죽을 듯한 슬픔에 잠겼다. 그녀는 수치심과 실연에 대한 상처로 동굴에 숨어버렸다. 그녀는 점점 초췌해져 갔고 마지막 살점까지 바람에 날라가자 결국 육신을 잃고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이 고통을 알도록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기도에 응답했다. 나르키소스의 어머니 리리오페가 동료 요정들에게 부탁한 일을 거둬드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르키소스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불행히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자기 자신에게서 얻게 되는 저주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예언대로 그는 자신을 사랑해주던 많은 이들과 같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열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물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에코는 나르키소스가 자신에게 남긴 말을 빌어, 그녀가 소원하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사랑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나르키시스


나르키소스가 죽은 그 자리엔 수선화(Narcissus)가 피어났다.

수선화 꽃말은 자존, 고결, 신비와 더불어 자기애, 자만, 자존심, 내면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이 수선화의 매혹적인 향은 다른 잡내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한데, 마치 수줍음 따위는 없다는 대담하고 상쾌해서 모든 이를 사로잡는다. 반면 자기를 상처 입히면 보호물질을 분비하는데 때문에 절화 된 수선화에 다른 꽃을 함께 꽂아놓으면 모두 시든다. 또한 무감각이란 나르케라는 어원과 같이 마비 성분을 가진 알칼로이드계 성분을 뿜어서 동물이나 사람이 먹게 되면 위험해진다.


그것은 마치 강의 모든 요정을 매료시켰던 나르키소스의 신비와 같고, 지독한 자기도취로 자신 외에 주변의 것들을 고사시켜버리는 그의 위험과도 같다. 이런 자기애에 따른 부작용을 심리학적으로 정의한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다. 영국의 심리학자 해브룩 엘리스가 1898년에 처음 사용했고, 프로이트가 1914년에 '나르시시즘에 관하여'란 논문을 쓰면서 알려졌다.





자기애란 누구나 있으며, 긍정적인 작용도 있지만 악성 나르시시즘을 보이는 사람들은 나르키소스와 같이 주변인과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통상 이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이 나르시시스트의 발현은 유전적 요인보다 양육환경에 요인이 크다고 보는 것이 최근 학계의 통설이다.(1)


1. 양육 시기 부모의 지나친 자존감 고취

2. 어린 시절 치욕적인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한 자기 가면


나르시시스트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과도한 대화 주도, 갑작스러운 격분과 무례, 상대 비하, 추종과 칭찬에 대한 갈망, 오만함, 공격성, 권력통제욕 등이다.


칭찬을 듣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자기 자랑만 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해서 매우 시기하고 질투한다.

자신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쓴다. 폼을 잡는다.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기분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만 우선한다. 자기 이야기만 지껄이려고 한다.

자부심이 강하다.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화제가 중심이 되면 기분이 나빠진다.

모두 자신을 주목해 주지 않으면 토라진다.

주변 사람이 자신에게 맞추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이외의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치켜세워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한다.


그들의 자아는 자기 본연의 것아니다. 가짜 인격(가면/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있어, 이 인격이 무너지면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기방어'를 한다. 그래서 '반성, 사과, 인정, 자아성찰'을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극렬하게 저항하므로 '갑작스러운 격분과 상대 비하, 폭언'을 일삼는다. 또한 병적인 '공감능력부족'을 보이는데 이 가짜 인격을 유지시켜줄 수단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성공과 권력유지에 목을 매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을 공감한다든지 동정하는 등의 일반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때문에 주변인을 사용대상으로 보고 착취하고 이득과 필요만을 계산하게 된다. 그래서 '고맙다'란 표현이나 '칭찬'을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 포지션을 지키기 위해 위협되는 주변인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와 경계를 하게 된다.


그들이 격분할 때는 이런 자기 모습이 들키거나 지적받을 때, 통제 밖으로 벗어나려 할 때, 타인이 자기보다 더 좋은 상황으로 전개될 때(주도권 이전) 등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소용없다. 바로 말꼬리를 잡아 폭발하고 치욕과 모욕을 주면서 감정쓰레기를 전가시켜버린다.


사실관계를 혼돈하고 왜곡하며 본질을 희석시켜버린 후 감정싸움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바로 '니 탓, 니가 먼저'를 외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환한다.


어떻게 이렇게 고약한 인간 격이 만들어질 수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 나르시시스트의 전부인 가짜 인격 유지 때문인데, 그들은 이 페르소나를 쓰고 있지 않으면 매력도 없어질 것이고 사랑도 받지 못하고 결국 버려지게 될 거란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유아기 부모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버려지거나 뒤처질 것과 같은 공포심에서 출발한다. 살기 위해 남을 깍아내리고 자신을 높여서 자신과 부모가 바라던 그 '이상'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자존감을 빛처럼 바라지만, 실상 자기정체성 조차 없는 '나는?'에 목말라있는 사람과 같다.


결국 끊임없이 대상을 찾고 그 대상을 통해 자기 우월감,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착취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뱀파이어와 같아서 혹자는 '에너지 뱀파이어'라고도 한다.

반면 저 외로운 수선화에 동정하여 기꺼이 피를 빨리는 이들을 과도한 공감능력을 가진 에코이스트(Echoist), 초민감자(HSP (Highly Sensitive People)), 또는 '코디펜던트(Co-dependent)', 엠패스(Empath) 라고 한다.(2)


마치 상대에 대한 상처와 저주, 연민으로 얼룩진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사랑이야기와 닮아 있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집대성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 실려있다. 나르키소스는 나르시시스트들의 타인 비하로 인한 자기 우월감 고취 심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또한 나르시시스트에게 착취당하거나 상처받는 추종자인 에코 역시 코디펜던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비디우스가 살던 기원전 로마시대에도 이미 이러한 나르시시스트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란 뜻이 되겠다. 자기만을 사랑할 줄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와 남의 말을 따라할 수 밖에 없는 에코의 공허한 메아리. 나르시시스트와 코디펜던트의 사랑이 어쩌면 만세에 걸쳐 전래된 슬픈 동화 일지 모르겠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주변은 그녀의 당당하고 대담한 향기로 마취되었고, 샛노란 꽃은 마치 '세상의 중심이 나이니 나만을 바라봐줘요'라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 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마음 한 켠에서는 그녀에 의해 가려지고 밟혔을 꽃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 활기차고 밝아 보이는 수선화와 함께한다면 나는 행복할 거라고만 생각을 했다."


2022.07.09



각주.

(1) (에디 브루멜만(Eddie Brummelman) : '지나친 칭찬이 아이를 자기도취증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Too much praise may make kids narcissistic)'

(2) 코디펜던트 나르시시스트 관계


참조.

(1)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AD 17년경) : [변신이야기(Metamorphoses)](AD 8) 중, [나르키소스(Narcissus)와 에코(Echo)]에 관한 구절

(2) 나무위키 :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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