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도와줘서 나한테 얻어지는 게 무엇인가. 저런 감사 인사를 받을 때 즈음이면, 득과 실 다시금 계산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안 도와주고 매몰차게 거절해도 나에게는 별일 없었을 것인데, 언제나 무리하는 상황도 함께 동행하며 그렇게까지 저들을 돕는 이유는 내 자존심 때문이었다.
뭐든지 잘해야만 된다는 16년의 자기 암시들은 이 옹졸 맞은 고집을 굳건하게 지키기 위함이다. 일, 공부, 꿈, 사람관계 등 이런 혼잡함들을 별것 아닌 것처럼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내 목적이지만, 그러나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현실과 마주할 때마다,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못 할 것 같아?"라고 스스로를 몰아대는 나는 타버린 나무에 다시 불을 붙이는 것 마냥 느껴진다.
이런 자기 암시는 어떻게 보면 피해망상증 같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눈에 불을 켜고 남들과 나를 비교해 가며 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냥 포기하고 도망가도 된다. 16년을 공중분해 시켜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루고 싶은 이유는, 당신의 아들이 달성한 결과를 그 두 눈에 새기는 걸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첫 유럽 경험에 신이 나면서도 발걸음을 돌려 구석에 앉아 질질 짰던 2020년의 나는 참 볼썽 사나웠다. 슬퍼서 독 두꺼비마냥 울어대는 게 아니라, 더 빨리 오지 못하고 당신의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하게 만들었다는 게 죄송해서였다. 그렇게 수많은 다짐들을 해도, 이 정도밖에 안되었던 스스로가 미웠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우연한 기회로 다시 찾게 된 이유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목표 이루라는 것이겠다.
유학 시작하며 자기 암시 하나를 더 만들었다. 지하철에서 앉지 않는 것이다. 내가 편하게 살면 유학의 목적도 망칠 것 같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별 것 아닌 듯한 이런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면 누구보다 빠르게 모질이가 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융통성 없이 행동하는건 바라지 않는다.
4년 동안 음식점이나 카페에 들어간 경험이 손에 꼽는다. 집과 연구실만 오가며 반복할 때, 마치 너는 죽지 말아야 한다며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있었다. 뜬금없이 돈이 필요한가 생각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도와주자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도와줘야지" 하고 힘차게 길을 나서며 그렇게 마주하고 돌아오며 도움 받은 사람은 나였음을 깨달았다.
서로일면식도 없는 첫 만남이었는데, 물 흐르듯 이야기를 하려 하는 나를 보고 놀랐었다.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하려 하지, 내가 시간이 많나? 안하던 맥주까지 마셔대고 말이다. 집에 한참을 걸어가며 길을 잃었을 때 즈음, 거기서 떠들어댄 말들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전 주에도 그러더니, 이번 주에도, 이 기간에 나를 정신 들게끔 해주러 왔던 거였다. 굳이 의미를 가지려 하면 신이 머물다 간 자리라는 거겠지만, 그들이 이런 의미부여가 없어도 신 같이 능력 출중한 청춘들 중에 한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아니면 그런 아우라 뿜어져 나오는 존재들로부터 에너지 받아가라는 것인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다는건 그만큼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나 깨달음의 이야기는 쏙 빼놓고 무지성으로 칭찬만하니까 상대방이 의아해 하는게 당연하다. 그냥 고맙다고 이실직고 하면 될 것이지, 대단하세요! 라는 말로 유압프레스처럼 압축해대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광고라도 하듯 부족한 사회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박사가 대수인가. 만약 그들도 마음먹고 동시에 시작했다면, 나보다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칭찬해 주는 이유는 그냥 몸집 큰 인간을 마주하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따금씩 왜 이렇게 상대방이 부담을 가질 정도로 칭찬을 하는 건가, 아니면 장난을 치는 건가 의아해하는 나는. 칭찬 받아 부끄러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이 사람이 나에게 없는 걸 가졌다는 걸 부러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이리 많으니, 내 수련의 갈길이 한참 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처럼 올바른 사람이 되려 한다면 정신 차리라고 받았던 에너지를 좀 더 오래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