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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Dec 01. 2022

영양가 있는 흙과 같이

되고 싶은 본인 인성

나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대상의 시작이 가족이고, 끝에도 가족이다. 지난 15년간 일기장을 적어오면서 돌아본 나는 아무리 관리를 한들 한 순간에 나태함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숨도 못 쉬게 통제해야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이것으로부터 가능성을 보이고 성과를 거두니 이런 상황을 어느 순간부터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이든 우선순위에 놓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들을 그렇게 많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 방법을 나는 즐기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오롯이 나 혼자일 때 장점을 보이겠지만, 둘 이상의 사람이 있게 된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나를 알고 지낸 사람, 동기, 특히 연구실 선배들은 내가 이럴 때마다 나를 경계하게 되었다.

한쪽에서 너무 불을 켜고 달려들면 다른 한쪽에게는 경각심이 올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보이는 말뚝을 뽑아내고 싶은 심정인가. 입 닫고 경계만 하면 아무 일도 없겠지만, 내 기억에는 그들이 그냥 입만 닫았던 순간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 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경각심을 가지게끔 만든 것 같다.


또 다르게 돌아본 나의 모습은,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다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궁금하지도 않은 쓸데없는 말들을 내던지고 그들에게 이상한 지적을 받는 것이다. 평소 사람 대하듯 오로지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면 될 것을 무슨 이득을 얻겠다고 별 영양가 없는 말들을 내뱉는지 모르겠다. 말을 적으면서도 내가 웃기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런 상황이니 들어달라고 호소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런 느낌은 아닌데  내가 나를 모르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결국에는 내가 지적받는 상황을 겪게 될 때마다, 또 긴장을 놓쳤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이런 상황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게 되니까, 이런 질문들을 안 하는 게 서로에게 이로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도 상대방도 이해 못 할 질문들을 쏟아대는 이 상황들은 저번에도, 그 이전의 경험에서도 그랬듯 입 닫고 내가 스스로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들 중에는 가르치려 들거나 선을 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먹으로 해결했었지만 지금에야 그러면 바로 인생 난이도 하드 코스로 직행이다.


애초에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마음 하나 통제 못하게 되는 거면,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거나 내가 먼저 멀어지는 게 서로에게 얼굴 붉힐 원인 제공을 차단하는 방법이겠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고 그렇게 일기장에 적어대도 사람 마음을 잘 모르겠다. 알면 내가 유비 현덕이겠지. 이런 내 성격 때문에 빌런들도 참 많이 만든 것 같다.


지적받을 정도로 그렇게 모나게 살아오진 않은 것 같은데, 사람과 가까워지려 할수록 지적받는 것 같다. 아니면 애초에 사람과 멀어지려 해서 모난 놈인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람은 본성대로 행동하는 게 마음 편한 것 같지만, 내 목적은 가족들이 듬직해하는 자식이니 그거 맞춰가려면 아직도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최근에 한국에서 대학생들에게 해외 대학 탐방 관련 건으로 연락이 왔었다. 예전에 친분 있던 교수님을 통해 강의하러 갔던 학교였는데, 본인들이 교내에서 실행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고자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그 프로그램에 합격하면 유럽으로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 지원해주고 장학금을 지급해준다고 한다.


굳이 학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이곳에서도 유학에 지원하고자 연락 오는 한국인들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한 번 도와주면 물건 맡겼다는 듯이 두 번 세 번 요구하고, 불응하면 구설수를 만들거나 적반하장을 한다. 모든 이가 그러지는 않지만, 참 내 시간 아깝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고민하게 되었다가 인터뷰 요청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혔었다.

이런 상황들을 매번 겪을 때마다 "너는 왜 그렇게 밴댕이처럼 구냐", "내가 유학 준비할 때 절실했던 상황은 이제 잊어버린 거냐?" 등으로 지 혼자 말하고 대답한다.


나는 추천서 1장 없이 유학을 오게 되었다. 선 경험자가 없다는 상황보다는 내가 내 목적에 대해 조언받고자 할 때, 누구도 나에게 조언해 줄 수 있거나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마저도 익명성에 기대어 정보를 얻고자 조언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유학은 절대 불가능하니 한국에서 취직하라는 답변이었다. 말을 참 쉽게 하는 것도 그렇고, 가볍게 하는 것도 이들의 능력이겠다.


오히려 답변 감사하다고 들이대면 다시 또 "너를 생각해줘서 하는 소리니 받아들이고 포기해라"라는 권위적인 답변의 연속이었다. 나 같은 학연, 지연, 혈연도 없는 유형이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이다. 절실함은 이렇게 이용하는 거구나 했다. 그럼에도 포기 않고 내 갈길 가니 지금에 이르렀다. 내 고집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지금의 지도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운 좋게 얻어걸린 행운 같기도 하다.


내 석사 지도교수님은 고3 입학 면접 때부터 알고 지냈었다. 그분의 제안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게 되었고 연구 주제도 맡게 되었다. 사실, 연구자의 꿈은 내가 선택하고 목표했던 것이지만 내가 소망했던 주제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 집단에서의 사람 관계의 이간질과 각종 불합리함 들은 시간이 갈수록 분노로만 가득 차게 되었다.


물론, 그런 일반적인 상황들은 언제나 이겨낼 수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내 성과 이루면 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면 별 일 아니었다. 그러나 내 가족을 건드리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요즘 세상에도 가족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인터넷에서나 보는 상황들을 내가 겪고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덕분에 그들의 행동으로 내가 빛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스승님이라는 명목 하에 3년을 고심하고 또 고민해서 말씀드린 유학 의지는 시베리아보다 차가운 바람으로 답변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결심하고 말한 나를 참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나아갔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들을 꼭 도와줘야 하는가라고 다시 또 생각하게 되었을 때 즈음에, 아버지와 대화하고 나서 인터뷰 거절을 번복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멀리하던 그 사람들이랑 뭐가 다른가 였는데, 참 이런 상황은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

 

그렇게 인터뷰에 응하고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더니 합격소식을 이메일로 알려주었다.


실력이 우선시 되는 이 바닥에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힘을 쏟아야 하고, 통제 하나 못하면 바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은 철저히 마음을 닫고 통제된 상황 속에서 내 할 일 하는 거다.


이런 영양가 없는 사람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이 최소한의 영양가라도 얻는 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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