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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Mar 26. 2024

흙 내음과 빗방울

26.03.2012

내가 만약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간 순간이다.


쓸쓸하고 찬란한 드라마 도깨비 속 대사이다.


12년 전의 오늘, 나는 논산으로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모질이 오빠를 안아주는 이 여자 강민규의 포옹에는 손 떨림이 느껴진다. 눈물을 훔치고 등교를 하는 모습은 굵은 뿔테 안경으로도 가릴 수가 없어 보인다.

"잘 다녀와"

평소에는 나를 마치 동물 대하듯 조련하던 이 4살 터울의 고등학생은 내가 입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것 같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간 동생을 뒤로하고, 침묵으로 논산으로 향했다. 말없이 눈시울만 붉어지는 아버지, 대놓고 훌쩍이는 어머니, 솔직히 나는 그런 와중에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논산 훈련소에는 여우비가 내렸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병장의 흙 내음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녀올게요"

입영 직전에 아버지를 못 안아드린 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된다. 떠난다는 말을 힘차게 내뱉고 줄을 서서 앞만 바라봤다. 부모님과 눈이 마주친다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어디론가 떠났으면 했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온 대학에는 목적성을 잃고 방황만 하는 시간이 아까운 이유도 있었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정말 학자가 되고 싶기는 한 것인가. 이런 의미 없는 질문들만 되풀이할 때즈음 ROTC를 포기하게 되었다. 2번이나 시도해서 붙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원인 모를 결정이었다. 


그렇게 봄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나는 군인이 되었다. 벚꽃이 피고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즈음 면회 온 가족들을 보고 그간 내내 찾던 해답에 실마리 찾게 되어 시간이 더욱 흘러 어둡고 고요한 강원도 산골을 떠날 때가 가까워서야 확신을 얻었다. 

내가 바라보는 미래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대를 것도 사실 가족들을 위해 군인이 되었다는 가까운 같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밖으로부터 받은 은혜들이 많다. 방황했던 나에게 이러한 순간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12년이 지나 다시 또 흙 내음을 맡게 되는 계절이다. 빗방울이 떨어진 이곳의 풍경은 거칠었던 연병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는 이곳으로 떠나오며 아버지를 꼭 끌어안아드렸다.

이제는 더 이상 칠흑같이 어두운 내면을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음의 이야기는 내가 당신을 세상 쪽으로 등 떠밀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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