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출근길, 전철을 타고 베를린의 풍경을 보며 이동하다보면 원인 모를 감정들이 벅차오른다. 아침이라서 그런가 피곤하거나 예민하다는 그런 것보다도 어딘지 모르게 전철 창문으로 화가 나있는 내 얼굴이 비추어진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가 라며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화가나 있다가도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이 생각되어 눈물이 핑 돈다.
아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려하는 이 모질이의 눈에 마스크로 안대 만들어서 쓸까 고민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이러는 원인을 몰랐었다. 매번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거나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그 순간에도 속은 다 썩은 과일 같은 이 심정은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며 이에 대한 답을 얻나 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홍길동마냥 역마살을 티낼 필요가 없었다. 원인도, 이유도 다 나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득, 덤벨을 들어 올리다가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저 마음이 내가 자존심이 세기 때문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자존심 상하기 싫어 미리 노력하고 이루어 놓으려는 것이 내 본심이었다. 정확히는 가족들이 자존심 상할 상황을 나로인해 만들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다.
공부가 밥줄인 직업이 목표인데, 동기부여가 자존심이라니 순수한 목적으로 학자가 되기에는 참 부족한 인성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가진 적성은 무엇일까. 애초에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적 없어서 한번은 이것 저것 손에 닿는대로 달려들었었는데, 가장 쉽고 돈 안들이는 것이 공부라고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이벤트성 깨달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그냥, 부모님의 바람이 내 바람과 일치해서라고 생각하는게 진실된 것 같다.
부모님 가게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아들, 너는 이런 힘든일 하지말고 공부해서 편하게 살아" 라고 말하는 당신의 인생에는 나이 40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게끔 한에 서려있었으나. 요즘에는 이 빌어먹을 연구가 장사보다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은 없고 흥미만 높은 나에 대해 부족한 근성을 의심할 뿐이다.
장사를 하는 부모님은 책에서 본 메뉴얼 장사꾼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많이 판매하는 것을 바라면서, 판매 수익에 중점을 두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센스가 있어서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자영업자들마다 장사의 철학이 서로 다른데, 끝까지 살아 남는 것 뿐인게 그들의 목적이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을 넘어서까지 결국 살아남았다.
반대로, 식당에서 내가 손님의 입장에서 있으며 드물게 저샛기는 못배웠나 생각하게 만드는 진상을 경험한 순간들이 있다. 단지 본인 심리에 불편함을 줬다는 이유로 사장 부부의 고개를 굽신거리게끔 만드는 저사람의 지나온 인생이 30초로 설명이 된다. 그렇게 나의 부모님도 돈 한 푼을 위해 고개를 굽신거렸다.
저 사장 부부나 나의 부모님이나, 사람의 마음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물론, 가족들은 내가 자존심이 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공부를 하기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저럴때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태도로 내 직업에 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내가 항상 화가 나 있는 이유는 그런 불순한 생각으로 내 직업에 임해서 인 것 같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라면 잘 하기라도 하던가.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도 못 이룬다면, 지능을 의심해봐야한다.
그럼에도, 비록 나같은 놈이 학자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학자로서 정통하기 위해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