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012
내가 만약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간 순간이다.
너무도 유명한 쓸쓸하고 찬란한 드라마 도깨비 속 대사이다.
12년 전의 오늘, 나는 논산으로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모질이 오빠를 안아주는 이 여자 강민규의 포옹에는 손 떨림이 느껴진다. 눈물을 훔치고 등교를 하는 모습은 굵은 뿔테 안경으로도 가릴 수가 없어 보인다.
잘 다녀오라는 동생
평소에는 나를 마치 동물 대하듯 조련하던 이 4살 터울의 고등학생은 내가 입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것 같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간 동생을 뒤로하고, 침묵으로 논산으로 향했다. 말없이 눈시울만 붉어지는 아버지, 대놓고 훌쩍이는 어머니, 솔직히 나는 그런 와중에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논산 훈련소에는 여우비가 내렸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병장의 흙 내음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녀올게요~
입영 직전에 아버지를 못 안아드린 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된다. 떠난다는 말을 힘차게 내뱉고 줄을 서서 앞만 바라봤다. 부모님과 눈이 마주친다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어디론가 떠났으면 했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온 대학에는 목적성을 잃고 방황만 하는 시간이 아까운 이유도 있었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정말 학자가 되고 싶기는 한 것인가. 이런 의미 없는 질문들만 되풀이할 때즈음 ROTC를 포기하게 되었다. 2번이나 시도해서 붙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원인 모를 결정이었다.
그렇게 봄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나는 군인이 되었다. 벚꽃이 피고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즈음 면회 온 가족들을 보고 그간 내내 찾던 해답에 실마리 찾게 되어 시간이 더욱 흘러 어둡고 고요한 강원도 산골을 떠날 때가 가까워서야 확신을 얻었다.
내가 바라보는 미래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대를 한 것도 사실 가족들을 위해 군인이 되었다는 게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밖으로부터 받은 은혜들이 많다. 방황했던 나에게 이러한 순간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12년이 지나 다시 또 흙 내음을 맡게 되는 계절이다. 빗방울이 떨어진 이곳의 풍경은 거칠었던 연병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는 이곳으로 떠나오며 아버지를 꼭 끌어안아드렸다.
이제는 더 이상 칠흑같이 어두운 내면을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음의 이야기는 내가 당신을 세상 쪽으로 등 떠밀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