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본인이 못해준 것만 생각하는 당신은 당신이 낳은 모질이가 여기서 고민하며 갈등하는 것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미안해한다. 어떻게든 혜안을 마련해주려고 하나, 본인도 모르는 일에 마땅히 제안하지 못한다. 그렇게 매번 당신은 이 철부지 아들의 눈치를 보며 전화기 너머로 급한 마음 발 동동 구르는 걸 알려주게 된다.
매번 이런 미안함을 갖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의 모질이가 이유를 물었을 때, 네가 만약 더 좋은 집에서 자랐으면 그런 고민도 안 한다는 둥, 못난 부모가 못 해준 것들에 대해 읊는 당신을 보고 모질이는 괜히 화를 낸다.
그렇게 이야기의 끝자락은 그만 괴로워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거나, 국가를 버리고 여기서 평생 살라고 감정에 호소한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모질이는 그동안의 행적을 말해주며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며 온몸으로 열변을 토해 보지만 60대를 바라보는 이 중년의 여성을 설득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들의 짝 이야기로 발작버튼을 누른다.
버튼이 한 번 눌리기 시작하면, 아들이 가진 이성에 대한 이상형 분석부터 손주 이야기까지 가게 된다는 걸 아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아들도 급발진하며 감정을 토한다. 사실 나는 이 중년 여성이 이렇게나마 멀리 떨어져 사는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었으면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없이 자라지 않았다. 옷, 음식, 유행, 교육 등. 어떻게든 치킨 기름 냄새 풍기는 아들이 되지 않게끔 기를 쓰고 제공해 준 두 분은 고작 반장이 되었다는 이유로 아이리버 mp3를 사주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뒤에야 지금은 줘도 안 가질 그 기계를 무리까지 해가며 사주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신의 아들은 또 화가 난다. 그 기억은 평생 잊지 않을 예정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들의 모질이는 항상 받기만 해 온다는 사실이다.
내가 못했고 부족한 실력인데, 이런 고민이라도 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내비치기라도 하면 바로 다른 집 부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내리 깎는 당신이 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이 병신 같은 철부지한테 미안해하는 것일까. 오히려 죄송스러워할 것은 30이 넘어서도 당신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나여야만 한다.노력이 부족해 그 먼 곳에서도 당신을 불안감에 쌓이게하며 걱정하게만든 내가 싫을 뿐이다.
남에게는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라며 물 흐르듯 흘리라고 말해대면서, 본인은 정작 담긴 물을 흘리러 발 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16년이나 다짐했다는 게 무능해 보인다. 내가 과연 남을 응원할 주제가 되나.
당신의 아들이 시간이 갈수록 모질이를 벗어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이루어 드릴 꿈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이곳에 와서 했었고, 하고, 할 예정인 행동들은 모두 행복할 나와 그거 보고 뿌듯해할 당신들을 위한 다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 온 이곳에서 가문에 가장 잘난 원 탑이 되어보이겠다. 그리고 기뻐할 그들의 두 눈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