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인가, 의미 부여하는 스스로의 망상인가
감상에 빠질 시간이 있습니까? 정신없이 달려야 할 판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SCkGVBV60PU
2020년 1월, 무덤덤한 마음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음을 상기한다. 4년이나 살면서 대체 이 도시의 매력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오래 살다 보니 정이 들었다. 곰의 도시, 곰들의 아우성, 그 속에 자유 분방함이 있는 커닝시티. 이제는 긴장을 크게 하지 않은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움 속에 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내게 이곳에서 공부할 기회를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서 그런가, 나도 이곳에서 이곳을 거치는 이들에게 하나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마음을 먹어도 그런 상황들이 필연적으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게 당연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드라마 같은 상황들과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떠났던 모험들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경험들이 아닌 것 같다. 불안한 마음, 잠을 못 자는 상태는 고스란히 그곳에서도 지속되었다. 독일이 아닌 다른 국가들을 역마살 끼듯 돌아다닌 이유는 적어도 이동하는 동안에는 불안감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서는 하물며 가까운 동네 벤치에 앉아 있어도 곧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고 대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냐는 마음만 들뿐이었다. 전생에 비둘기였나 보다.
어느새 혼자 가만히 있는 행동을 하기 힘들게 되었다. 유학 준비할 때는 집 앞 개천가 벤치에 앉아 쉬는 게 일상이었는데, 굳센 아집과 자기 암시 그리고 자존심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금 벤치에 앉아보려 할 때, 백발노인이 대화를 걸어왔다. 정신머리 없이 뭐 하고 있는 거냐는 생각은 어디로 갔는지, 별것 아닌 주제의 대화에도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가 바라보는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르겠지만, 이런 타이밍들은 이제는 우연이 아니게끔 느껴진다. 신이 머물다 간 자리는 이런 순간들일까 싶다.
4년 전 눈물 바람에 감정 조절도 못했던 나에게 어린 꼬맹이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듯이, 이번엔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여자애를 웃게 만들어주는 이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가끔 발생하는 이벤트성 퀘스트와 같은 상황들은 팔자인지 아니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황만 바라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이곳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혼잡스러운 엔트로피의 도시인 것도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는데 큰 역할을 하겠지만, 출장길에 "오늘 나는 학교에서 시험을 망쳐 우는 교정기 찬 금발 여자애와 주먹 인사하며 빠이팅을 외친다"라는 걸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름도, 뭐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길을 동행하며 "울다 웃으면 도깨비 엉덩이를 갖게 된다"를 설명하는 나나 듣고 있는 이 고딩이나 신이 우연을 가장해 에너지 주고 싶어서 겪게 만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도움을 받기만 해온 이가 주는 방법은 참 미숙하고 어수룩하다. 그렇게 주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속마음을 꽁꽁 싸매고 있으면 상대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렇다고 도움 받아 고맙다는 것을 다 말하기에는 부끄러워서 무지성 칭찬으로 상대를 포장한다. 거짓 없이 상대를 대하고 싶은 나만의 표현법인 것 같다. 그들은 모르게 나 스스로가 도움 받은 것을 간직하면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당사자는 원인도 모르고 어이없어하는 게 당연한데, 그렇다고 다 속마음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뭐지 이 자식은? 이라고 생각 들어도 기분만 좋게 만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