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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May 01. 2024

4월의 남자

공학박사

유채꽃 피는 달, 가족들이 독일로 찾아왔다.

장시간 긴 비행시간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음에도, 아들 하나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들은 참 많이 준비하고 찾아왔다. 음식이며, 약이며, 옷이며, 나를 응원해 주는 다른 이들의 용돈까지...


서양권의 문화를 처음 접해서 그런지 긴장한 기색이 자주 보였다. 그럼에도 정작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공기 중에 무엇이라도 해낼 것 같은 행복이 도는 듯한 이 분위기에서 나는 안정되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타지에서 소매치기, 인종차별 당하는 것에 염려 둔 이전의 걱정과는 달리 베를린 이곳저곳을 아들 없는 아들 여행으로 즐기셨다.


생각보다 추웠던 4월, 나에게는 참 힘이 나는 날씨였다. 박사 학위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도와주는 이들 덕에 겨우겨우 이룰 수 있었다. 튀르키예, 프랑스, 독일, 중국, 이집트, 포르투갈, 모로코,  등 15국이 넘는 사람들이 머리 모여 그들 중 가장 먼 동쪽의 친구를 박사로 만들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참 복도 많다. 나는 이들에게 너무나 큰 도움들을 받았다. 몇 주에 걸쳐 내 책상에 함께 앉아 나를 성공시키려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모질이 같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이들 또한 내 학위 발표의 주인공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내 인생의 끝자락까지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고 살겠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또 했음에도, 학위 발표 당일에도 내가 과연 박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부족한 자신감과 함께한 디펜스는 노력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결국 더욱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당신의 또 다른 멀티버스 인생이 더욱더 나아갈 수 있다는 2년, 박사가 되기 전까지는 다시는 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또 2년, 가족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든 것에 죄송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당신의 모질이 아들은, 오빠는, 이곳에서 그렇게 모험을 해왔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머리가 똑똑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벽이라고 느낄 때마다 손쉽게 뛰어 넘어갈 수 있는 것을 굳이 스스로 상처 주며 벽을 깨는 방법 만을 고수한 내 고집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 덕분에 상처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힘들어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괜찮다고 다독여줄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보다, 이런 순간도 극복해 낸 모습에 자랑스러워할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박사 학위 발표를 잘 마치고 통과하였다. 나를 심사해 준 교수님들로부터 닥터가 된 것에 대한 축하보다, 이 소식을 들을 가족들의 표정이 더 궁금했다. 그렇다.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서 다행이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라서, 오빠라서, 조카라서, 그리고 손자라서 행복하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인생의 시작점에 서 있다. 앞으로의 인생은 내가 다시 또 선택해 나아가야 하겠지만, 어떻게든 하나씩 하다 보면 답이 보이겠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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