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동안 하드코어 코스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제대로 경험하고 이직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이직의 대한 생각은 2주마다 찾아오는 릴리즈 금요일 새벽, 쉴 새 없이 일 하는 주말, 새벽까지 일하는 밤마다 들었지만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일이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2주마다 있는 릴리즈 금요일 중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릴리즈 전날은 주로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고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지쳐서 아침 6시쯤 책상 밑에서 쓰러지듯 잠이 든 적이 있었다.
참고로 회사에는 침낭이 하나씩 구비되어 있었고 책상 밑에서 침낭에 들어가서 자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출근한 CEO가 자고 있는 나를 보고 CTO에게 릴리즈를 위해서 스케줄 된 일을 다 못 끝내고 자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밤새 잠 한숨 못 자다가 잠든 지 30분 지났을 때이다.
CTO로부터 조금 전까지 일 하다가 방금 막 잠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겸연쩍은지 어물쩡 오피스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진짜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도 어렵게 취업한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오기로 라도 1년은 힘들어도 버텼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나니 이 곳에서 내 나름의 목표가 달성이 돼서 그다음부터는 하루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망할 스타트업에서 탈출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실상 탈출에 가까웠기 때문에 신중한 계획이 필요했다.
우선, 회사의 지원이 필요한 외국인 근로자 비자인 H1B 비자로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혹여나 해고가 되기라도 하면 미국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비밀로 인터뷰 준비를 하는 것과 그 준비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했다.
워낙 바쁜 스케줄 속에서 밤낮없이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던 환경이었던 지라 이마저 쉽지 않았다.
다행히 1년쯤 됐을 때 일요일 하루는 쉴 수 있게 회사 근무 시간이 조절이 되었다.
일 년 만에 일주일에 하루 생긴 주말을 인터뷰 준비에 써야 하는 게 억울했지만 이직 준비를 위해서 유일하게 있는 자유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요일만 되면 동네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인터뷰 준비에 몰두했다.
1년 넘게 스타트업에서 엄청나게 구르면서 많은 일을 하고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 준비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인터뷰 준비도 어려웠는데 막상 인터뷰를 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회사 규모가 워낙 작고 회사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였다.
그러다 보니 전화 인터뷰도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보러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나가서 인터뷰를 봐야 했다.
최종면접이 잡히면 회사에 휴가를 쓰고 인터뷰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에 기회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신중의 신중을 기해서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였다.
첫 인터뷰는 그 당시 가장 핫한 스타트업이었던 트위터와 보게 되었다.
전화 인터뷰 시간이 애매해서 차를 타고 근처 주차장에서 전화 인터뷰를 봐야 했는데 생각보다 첫 인터뷰라 긴장도 됐고 무엇보다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았다.
코딩 인터뷰도 아니고 전화로 기술적인 질문을 하는 식의 인터뷰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인터뷰에 애를 먹었다.
결국 인터뷰 직후에 안 돼겠구나를 알았을 정도로 인터뷰를 못 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봤던 수많은 인터뷰들이 생각이 났고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이젠 인터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 그때처럼 무작정 인터뷰를 볼 수도 없어서 초조해져만 갔다.
그다음 도전했던 회사는 링크드인 (LinkedIn)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가 돼서 대기업이 되었지만 당시엔 한창 크고 있는 젊은 스타트업이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실로 엄청난 기회였다.
링크드인은 내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서 전화 인터뷰를 생략하고 바로 온사이트 인터뷰를 주었다.
내겐 둘도 없을 기회였지만 나름 만반의 준비하고 온사이트 인터뷰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탈락했다.
이후 몇 번 추가로 인터뷰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준비가 아직 한참 덜 됐다는 판단이 들어서 천천히 몇 달 더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시도해보기로 계획을 바꿨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현재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회사가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고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그러고 몇 달 후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에서 인터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과의 첫 인터뷰였다.
이번에는 중간에 워밍업도 하고 몇 달 사이에 나름 충분히 준비를 해서 인터뷰를 시작하는 거라 이전보다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총 2번의 전화 인터뷰가 있었는데 전화 인터뷰를 무사히 통과하고 다행히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진행이 되었다.
온사이트 인터뷰는 내가 지원한 팀의 엔지니어들과 매니저와 진행이 되었는데 당연히 쉽지 않았고 아슬아슬했던 인터뷰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바 레이저 (Bar raiser) 인터뷰어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서 나갔다가 다시 인터뷰를 보러 돌아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만족스럽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 바 레이저 (Bar Raiser): 채용 면접 절차 중 하나로 사내에서 특별 면접관을 선발해 회사의 능력 기준치(bar)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바 레이저와의 인터뷰는 지원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면접 과정이기도 하다.
다음날 하루 만에 리크루터에게 전화가 바로 왔다.
결과는… 합격!
합격 전화를 받고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미국 대기업으로의 이직 합격인 동시에 나에겐 끔찍했던 스타트업으로부터 탈출구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 후 리크루터와 몇 번의 전화 통화를 하고 최종적으로 오퍼 레터에 사인을 하였다.
비자가 걸려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신중의 신중을 기해서 모든 게 확정이 되고 나서 다니고 있던 스타트업 회사에 이직을 알렸다.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도대체 이런 스케줄 속에서 언제 인터뷰 준비를 하고 또 언제 시간이 나서 인터뷰를 봤었냐고…
2주 동안 하던 일 마무리를 하고 인수인계를 하고 나서 첫 직장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의 생활을 마쳤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1년 반 동안의 스타트업 경험이 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커리어의 기초를 다진 기간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만 너무 안 좋은 환경에서 기초를 다지는 바람에 나중에 몸에 밴 안 좋은 습관을 빼는데 상당히 고생했다.
마지막 날 사무실을 나오는데 흡사 군대를 전역하는 기분과 함께 시원섭섭한 느낌이었다.
물론 다시 하라면 절대 하기도 싫고 절대 못 할 것 같았다.
나에겐 실망도 아쉬움도 가득 남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의 첫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