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일을 한 번쯤 해 본 사람이라면 사실 여기까지만 봐선 여느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 스타트업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나는 거의 매일 사무실에만 하루 종일 갇혀서 일만 하다 보니까 여기가 실리콘밸리인지 어느 미국 시골 한 구석 사무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소프트웨어도 기업 니즈에 맞춘 당시엔 나름 획기적인 B2B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였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론 단순히 검색엔진을 이용, 정보를 긁어와서 필요한 기업들에 제공을 해주는 다른 회사들에서도 많이 하고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는 서비스였다.
실리콘밸리에서 만의 특별한 경험을 원한 기대 심리 때문이었는지 취업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특별할 게 없는 그 실체를 맞이 하면서 기대와는 사뭇 다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모습에 현실을 알아가면서 동시에 점점 실망을 하고 있었다.
사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온사이트 인터뷰 때부터 낌새가 좀 안 좋았다.
인터뷰가 17시간이나 진행이 되고 새벽 2-3시가 될 때까지 아무도 퇴근을 안 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작은 스타트업이라 그냥 일을 엄청 열심히 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1년이 넘게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사 후 거의 1년 동안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18시간을 회사에서 일을 한 것이다.
사무실에 침낭을 가져다가 놓고 책상 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만큼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엔지니어링 팀에선 2주마다 릴리즈 스케줄을 잡아놓고 엄청난 양의 일을 주어졌다.
팀이 워낙 작다 보니 창업자들은 마이크로 매니징 (micromanaging)을 하면서 압박을 주었고 격주로 금요일만 되면 무리하게 스케줄 한 일들을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 밤을 새워야만 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라지만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다.
근무 환경이 이러다 보니 당연히 직원들이 견뎌내 질 못 했다.
들어오는 엔지니어마다 이런 식의 사이클을 몇 번 돌고 나면 처음에 의욕과 열정을 가지고 스타트업 라이프를 시작한 이들도 혀를 내두르며 회사를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창업자들은 핵심 엔지니어링 팀을 만든다고 이런 하드코어 한 문화를 의도 적으로 더 만들려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 개월을 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직원이 부수기였고 중간에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울면서 못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예상 가능하듯이 엔지니어링 팀에는 당연히 엔지니어 고용에 큰 문제를 겪고 있었다.
회사는 성장하는데 직원은 늘지가 않으니 기존에 있는 직원들이 배로 일을 해야만 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론 처음에는 이런 식의 하드코어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당시엔 ‘뭐든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였고 이렇게 일을 해서라도 제대로 된 일을 배울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 내 시간을 희생해서 다 쏟아부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 내가 몸담은 이 스타트업에서는 그 적당한 정도가 없었다.
1년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자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왔다.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미친 듯이 뛰기만 하는데 결승점은 보이지도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서 이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창업자들이 회상하듯 시리즈 A 투자를 받기 전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걸 저녁을 먹다가 듣게 되었다.
당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코스트코(COSTCO)에서 컴퓨터를 여러 대 사서 구글 *크롤링을 하거나 빅 데이터 프로세싱하는데 24시간 풀로 가동을 해서 돌리다가 반품 허용 기간 끝나기 전에 반품을 해서 환불받고 다른 컴퓨터를 사기를 반복하면서 회사 초기에 비용 절감을 했다고 했다.
*크롤링(crawling): 웹 페이지를 그대로 가져와서 거기서 데이터를 추출해 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은 회사 직원들을 그때 그 컴퓨터처럼 취급을 하면서 쓰고 있구나.’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한계까지 돌리고 지쳐서 회사를 나가면 새로운 엔지니어를 고용해서 대체하고 있었다.
그동안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간 엔지니어들은 반품된 컴퓨터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물건 값을 환불을 받아내듯이 1년을 못 채우고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은 처음에 약속된 스톡옵션을 받지도 못 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하드코어 문화를 가진 회사가 비단 내가 다녔던 회사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내에서 특히 스타트업 회사들 중에선 하드코어 문화를 가진 회사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회사들은 일을 하드코어로 많이 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같이 주어졌다는 것인데 스타트업인 회사가 성장하면서 개인이 회사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에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 가 된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적절하지 못하면 단순히 창업자들과 투자자들 배 불리는 짓 밖에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내가 다녔던 스타트업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 하는 시간을 따져서 연봉을 고려해보면 최저 임금 수준도 안 됐다.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회사가 성장하면 나중에 같이 큰 보상이 돌아올 수 있는 이유가 회사를 다니면서 받는 스톡 옵션 때문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업무만 강요한 것이었다.
원래 스타트업이 다 그렇다, 처음에는 다 그러면서 시작하는 거다 혹은, 그래도 많이 일을 배웠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을 많이 하니까 일을 많이 배우게 되는 건 당연한 거였고 단순히 일을 배운다는 걸로 합리화를 하기에는 비상식적인 부분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