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의 내 시작은 녹녹지 않았다.
단순히 현재의 내 경력만 보면 실리콘밸리에서 여기저기 회사를 옮겨 다니며 여유 있게 회사 생활을 해온 것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늦깎이 대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변변치 않은 영어 실력과 졸업할 때까지 인턴 경력이 전무해서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기까지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냥 애를 먹은 수준이 아니라 대학 4학년인 졸업 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1년이 넘도록 미국에 있는 대졸 신입 사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뽑는 회사들은 죄다 다 지원했지만 모조리 떨어질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졸업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서 내가 졸업을 할 당시에도 일자리가 많아서 인터뷰 기회는 많았지만 죄다 낙방했다.
더군다나 당시엔 딱히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나 대기업에만 도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초기에는 회사를 골라서 이력서를 내기도 해 봤지만 첫 인터뷰 조차 통과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나중엔 장소 불문하고 미국 전역으로 오프닝만 있으면 모조리 다 지원했다.
지원서 낸 회사 수만 따져도 100 군데는 족히 넘을 것이다.
결과는 대 실패...
결국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의 최종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 하고 처절하게 취업에 실패하였다.
미국 유학생 신분이었던 당시에 유학생 비자인 F1 비자로 졸업 후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단 60일뿐이었다.
* 미국에 입국하기 위한 비자(Visa)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F1 비자는 비이민 유학생 비자이다.
한마디로 졸업 후로부터 60일 내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비자는 만료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졸업 후에서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돌려봤지만 그전에 지원을 남발했던 탓인지 아니면 이미 경력이 거의 없는 대학 졸업 신입 사원들을 뽑는 시기가 지났던 것인지 이젠 인터뷰 기회마저 얻기가 힘들었다.
대학교에 소속되었던 대학생 시절에는 학교로 직접 찾아오는 회사들이 많아서 인터뷰를 따내기가 비교적 수월했는데 졸업 후엔 학교의 지원마저 없으니 더 힘들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에 여기저기 꾸준히 지원을 이어가던 중에 졸업한 대학교 내의 구직 관련 웹사이트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구직 포스트가 올라왔다.
당시에는 시기상 흔치 않은 구직 포스트였기 때문에 올라오자마자 당장 지원을 했고 다행히 전화 인터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인터뷰가 졸업 후 처음으로 잡힌 실리콘밸리의 회사와 전화 인터뷰였다.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생각도 들지만 그 당시에는 절박한 심정에 회사의 규모나 분야에 상관없이 어디든 취업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기회라 생각을 하고 인터뷰에 임했다.
졸업 후에 나름 준비할 만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거의 인터뷰 직후 불합격을 통보하는 이메일이 왔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본 만큼 큰 좌절감이 느껴졌다.
이쯤 되니 이젠 미국 취업은 진짜로 접어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탈락 이메일을 받은 지 이틀 만에 첫 번째 인터뷰를 재고를 하고 두 번째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두 번째 인터뷰는 전화 인터뷰가 아닌 집에서 과제처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이 됐다.
나한테는 어려운 전화 통화 없이 코딩만 하면 돼서 전화 기술 면접에 비해서 훨씬 수월했다.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거의 밤새다시피 해서 과제를 완성해서 보냈다.
다행히도 과제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는지 최종 방문 면접인 온사이트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연락이 왔다. 취업 준비를 하고 처음으로 받게 된 온사이트 인터뷰였다.
그것도 그렇게 바라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말이다.
기대에 부푼 마음을 가지고 첫 온사이트 인터뷰를 보러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인터뷰를 보는 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 산마테오(San Mateo)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도 고층 빌딩인 비자 본사가 위치한 건물 내의 18층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막상 인터뷰를 보러 가보니 총 직원 3명이 전부인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회사가 생각보다 (엄청) 작았지만 사실 회사 규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 유일하게 기회를 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회사였다.
아침 일찍부터 진행된 인터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사실 인터뷰라기보다 프로젝트 식으로 과제를 주고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는 것이 첫날의 인터뷰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해보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온사이트 인터뷰이었다 보니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인터뷰는 원래 이런 식인가 보다 했다.
인터뷰가 아침 9시부터 시작이 돼서 새벽 2시가 거의 다 돼서 숙소로 돌아갔다.
거의 17시간 동안 인터뷰를 본 셈이었다.
힘들었지만 어렵게 얻은, 어떻게 보면 진짜 미국에서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인터뷰에 임했다.
다음날 아침에 첫날 했던 인터뷰 과제를 팀 전체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에 결과가 바로 나왔다.
합격!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의 취업이 실패하는 듯하다가 비자 문제로 한국을 돌아가야 할 직전의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한 스타트업에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실 말이 스타트업 회사이지 창업자 둘 포함 총 직원 3명이 전부인 생긴 지 갓 1년을 넘은 완전 초창기 스타트업이었다.
거의 대학 수업 프로젝트 그룹만 한 규모의 작은 회사였지만 당시 미국 취업 시장 벼랑 끝에 있는 나에게 유일하게 기회를 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회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직원 (Full-time) 오퍼를 받을 수 있었고 주저 없이 오퍼 레터에 사인을 했다.
사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당시 어려웠던 취업 상황에 단순히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라는 것만 보고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 한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히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이 두 단어들에만 끌려서 미국에서 첫 직장 문턱을 넘게 되었다.
당시 취업에 절박했던 사회 초년생의 어리숙한 첫 발디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