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우선 실리콘밸리의 주축이 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면 대략 1980년대 초부터 2000년 대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인데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에 혜택을 받은 세대로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이들을 밀레니얼 세대 (Y세대)로 부르고 있다.
이제 이들의 선두 그룹이 30대 중반에 들어서고 사회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특히 테크 기업들에서는 이들이 주축이 돼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는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으면서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또 그 변화를 맞이하고 받아들이면서 함께 진화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디지털 세대라고도 불릴 만큼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보급의 혜택을 제대로 받고 디지털 시대와 함께 성장해왔다.
바로 전 세대인 X 세대들이 TV나 라디오를 통해서 소수의 방송사들로부터 정보를 일방적으로 공급받았다면 밀레니엄 세대는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장소/공간 제한 없이 서로 무한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의 문화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이다.
장소적 제한이 없는 인터넷을 통해서 글로벌하게 정보가 다방면으로 공유되면서 정보에 대한 선택의 폭도 넓어졌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어내는데 능숙하다.
그래서 이 세대에는 정보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한 판매상의 단골 질문인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는 이 세대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이미 필요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을뿐더러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최신의 정보를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서 몇 분 만에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
미국에서도 흥정 기술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자동차나 집을 살 때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냐’는 식의 비슷한 질문이 자주 쓰이는데 밀레니얼 세대는 흥정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가격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면에선 구시대적인 방법은 이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이에 맞춰서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차 브랜드인 테슬라는 온라인 상으로 모든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차 구입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직장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오퍼를 받고 연봉 협상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동안 이 협상을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 총보상액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했지만 이제 연봉의 정보도 더 이상 비밀 정보가 아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비밀로 하려고 해도 밀레니얼 세대의 공유 본능을 이길 순 없었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인터넷 상에서 모든 정보가 공유가 되고 나니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불필요한 연봉 협상의 과정을 없애고 투명하게 연봉을 공개해서 공평하게 지급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기고 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원자가 연봉 정보를 역으로 회사에게 물으면 회사는 숨김없이 공개해야 하고 반대로 리크루터는 지원자에게 현재 받고 있는 연봉 정보를 묻지 못하게 법이 바뀌고 있다.
또한 여러 회사들 내부에선 익명으로 연봉 정보를 서로 공유하자는 바람이 불기도 했었고 이런 변화에 대응하듯 몇몇 회사들은 그동안 연봉 협상으로 생겼던 연봉의 불균형을 자발적으로 바로잡기도 했었다.
정보가 곧 힘이 되는 시대에 밀레니얼 세대는 이 정보의 힘을 손에 쥐고 있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나이가 많아도 30대 후반밖에 안 될 정도로 아직 굉장히 젊은 세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 곳에서 안주하는 걸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를 찾아서 끊임없이 도전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진부한 인생을 거부하고 남들과 다른 본인만의 유니크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
직장에서도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들이 나타나는데 이전 세대들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승진을 잘해서 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였다면 밀레니얼 세대들은 안정과 승진보단 자신의 만족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요시한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이 욜로(YOLO)이다.
You Only Live Once 즉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기면서 살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해주는 문구이다.
주변에서도 이를 대변해주는 지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을 10년 넘게 하던 A 씨는 취미로 케이크 만드는 일하면서 만든 케이크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 이서 인기를 얻으면서 결국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고 엔지니어 일 보다 재미를 느낀 케이크를 만들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판매하는 일로 전향했다.
돈이나 안정적인 삶을 생각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을 하던 B 씨는 휴가 중에 일본에 방문에서 도자기 만드는 일을 경험하더니 동양식 도자기에 매력에 흠뻑 빠져서 일본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러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다.
어떤 친구는 다니던 스타트업 회사가 IPO를 가자 그때 생긴 돈으로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했고, 회사 일 스트레스 안 받고 좋아하는 게임을 원 없이 하고 싶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6 개월 동안 정말 원 없이 게임을 하다가 다시 취업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직 30대인 한 친구는 은퇴 준비를 일찍이 하고 있다.
직장의 속박에서 벗어난 빠른 은퇴가 인생 목표이다.
40대 되기 전에 은퇴 자금을 모아서 일찍 은퇴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꾼다.
기본적으로 삶의 추구하는 바가 달라진 거다.
이젠 먹고살기 위해 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갈구하는 이들이 주축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들은 한 곳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일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 가는데 지체함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요구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솔직한 의사표현이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승진을 원한면 승진을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한다.
열심히 일 해서 성과를 냈다면 알아주길 바라고 성과에 대한 적절한 인정과 보상을 원한다.
비판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솔직하고 자유롭다.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원하는 걸 이루고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욕구 충족과 성장이 이들이 회사에서 얻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물론 누구나 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원하는 걸 다 얻을 순 없다.
밀레니얼 세대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를 깨닫고 배우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을 겪는 자세가 그 전 세대와는 다르다.
훨씬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하면서 그 속에서 진화한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들이 실리콘밸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고 실리콘밸리의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실리콘밸리 주력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과 함께 생겨난 기업들이다.
공유 경제에 의해 탄생한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가 그렇고 트위터, 페이스북, 스냅챗과 같은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또한 그렇다.
그만큼 밀레니얼 세대가 실리콘밸리의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일으키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서의 변화가 어떤 게 있을까?
가장 먼저 짧아진 근속연수를 들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리콘밸리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마치 철새들처럼 2-3년을 주기로 회사를 옮겨 다닌다.
이유는 다양하다.
더 좋은 연봉 조건
더 나은 근무 환경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
새로운 도시로의 이주
승진
그냥
물론 ‘그냥’에 포함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3년쯤 되면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 그대로 ‘그냥’ 이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의 업무 환경이 이를 가능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테크 회사에서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 (Microservice Architecture)와 애자일 (Agile) 업무 프로세스의 도입이 큰 역할을 하였다.
*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 (Microservice Architecture): 규모가 큰 서비스를 기능별로 작은 서비스로 모듈화 해서 각 서비스들이 독립적이고 유연한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아키텍처
* 애자일 (Agile) 개발 프로세스: 짧은 주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수정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나가는 프로세스.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최적화된 개발 프로세스이다.
이를 통해서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들이 작은 팀 단위의 프로젝트로 쪼개지고 팀이 협동을 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작게 여러 개로 쪼개지다 보니 한 명 한 명 개인의 의존도가 최소화되었고 개인의 정보 독점 현상도 줄어들어서 팀 간의 충분히 정보 공유가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진행 중 팀원 중 누가 갑자기 빠져도 크게 영향이 없을 정도로 프로젝트를 융통성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 진행에 속도는 줄어들겠지만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큰 그림에는 문제없이 애자일 하게 프로젝트가 진행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대체자가 오면 금방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선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수는 있겠지만 사실 밀레니얼 세대의 잦은 이직의 트렌드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분야의 경우 20-30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이고 회사에선 이런 철새들을 모시고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되다 보니 애자 일한 개발 프로세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보다 유동적으로 진행해 나가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평생직장은 없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에겐 특히 직업 특성상 잦은 이직이 본인 경력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뿐더러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경력을 쌓아두면 오히려 경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들을 회사에 붙잡아 두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사내 팀 이동을 최대한 장려하기까지 한다.
직원이 회사를 나가버리면 직원이 그동안 회사 내에서 쌓은 지식도 함께 나가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회사 내에서 팀 이동으로 전환이 되면 팀 간의 지식 이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팀 간에 협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사내 이동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가 귀한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삼는 게 아니라 테크 업계 전체로 기회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칭찬에 목말라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겐 채찍보단 당근을 많이 줘야 한다.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만큼 빠른 승진을 원한다.
2-3년마다 옮겨 다니기 때문에 그 이상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1년을 쉬지 않고 일하고 승진을 바라기도 한다.
아버지 세대에 승진을 하려면 평생직장에서 5년, 10년 걸리던 그런 세대와는 템포가 많이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회사 입장에선 적당한 때에 승진도 시켜줘야 되고 칭찬과 성과에 대한 보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
여기에서 오는 부작용으로 빠른 승진을 위해서 전체적인 그림보단 개개인의 승진을 위한 불필요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팀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진행하려 하기보단 개인 승진의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따내가 위해 노력하고 그 방향으로 프로젝트들이 많이 진행된다.
한마디로 승진 프로젝트이다.
승진 프로젝트로 적합하게 될 수 있게 포장도 열심히 하고 가시성(Visibility)도 높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문제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계획이 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보니 결국 나중엔 장기적으론 불필요한 프로젝트들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더 큰 문제는 승진에 성공한 이들이 회사에 잘 남아 있질 않는다.
한 회사에서 목표 달성 후 다른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목표 달성을 위해 떠난다.
때문에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습성과 회사 이익의 적당한 발란스를 찾아서 팀을 운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떠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회사도 이들에게서 짧은 기간 동안 필요한 것을 최대한 얻어내고 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