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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CC Apr 29. 2020

실리콘밸리의 수평적인 조직문화

험난한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도입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 세계적 트렌드를 선도하고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가진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라고 하면 상하 직책 구분 없는 동등한 조직문화, 오픈된 오피스 공간, 자유로운 출퇴근, 상사 눈치 안 봐도 되는 근무 환경 등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요소들이 기업 문화야 영향을 주는 것은 틀림없지만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수평적 조직문화는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직체계에서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조직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명확한 역할과 책임이 주어져서 독립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고 그와 동시에 자율적인 조직 문화와 그를 이행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합당한 능력을 요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구성원들은 불필요한 보고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독자적으로 에자일 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흐름에 맞춰서 빠르게 변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모든 조직이나 모든 조직원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력이 충분히 없는 신입이나 주니어 직원들에게 전문성을 요구하거나 자율을 주는 것보단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교육과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교육과 프로세스의 선행이 없이 역할과 책임만 주어진다면 이는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가 있고 따라서 수평적 조직문화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업무가 수평적 조직문화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형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면 굳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만능키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자포스의 홀라크라시 (Holacracy)

회사 조직문화를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개선하는 사례로는 미국의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zappos)가 홀라크라시를 도입했던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홀라크라시는 ‘holachy’와 ‘cracy’ 합쳐진 말로 기본적으로 조직의 위계질서를 없애고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는데 그 뜻이 있다.  

자포스는 홀라크라시 도입을 하고 나서 15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직위를 없애고 모든 직원들이 직위 없이 동등한 입장이 되었고 수평적인 조직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자포스는 수평적인 조직문화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직 결론을 내리긴 이르겠지만 지금까지 보면 실패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많은 어려움과 변화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다.  

우선 예상 가능하듯이 홀리 크라시 도입과 함께 조직 내의 대혼란이 왔다.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홀라크라시 문화 도입 과정에서 회사의 조직문화 개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퇴직금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할 정도로 엄청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가량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빠져나간 직원들은 대부분 수직적 조직문화에 익숙해진 매니저/관리자급 이상의 직원들이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조직문화를 바꾸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조직의 변화는 기존 직원들로 하여금 강한 거부감을 들게 하였다.

거기다 직위를 없애면서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졌던 승진의 기회가 사라지면서 동기부여를 약화시키는 역효과도 일어났다. 


이 외에도 예상치 못한 부분들에서도 다른 역효과들이 터져 나왔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에는 조직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전문가로서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책임을 지고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숙련된 시니어 조직원들이면 모를까 주니어급 이하 조직원들에게는 사실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고 조직원들은 본인 능력에 감당이 안 되는 책임을 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홀리 크라시 문화에서 필수 조건인 조직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을 짧은 시간 동안 조직원들에게 심어주기에는 역부족 었다.

암묵적인 서열도 홀라크라시 문화 정착을 방해하고 있었다.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모인 어느 집단에서나 서열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아무리 표면적인 직위를 없앤다고 해도 집단에 내재돼 있는 암묵적인 서열은 쉽게 사라지지가 않는다.

자포스에서도 홀라크라시 문화 도입 후 전 직원의 직위를 없앴지만 암묵적인 서열이 그대로 자리 잡았다.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 또한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조직운영에 효율성을 위한 홀라크라시였지만 오히려 미팅이 많아지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비효율적인 면을 보였다. 

수직적 관료제 조직에 있었던 불필요한 보고나 절차는 없어졌지만 책임을 지고 있는 조직원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니 시간이 오히려 지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신의 책임이 되니 보다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 미팅도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고 결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시간이 더 걸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포스의 홀라크라시 도입으로 인한 수평적인 조직문화 개편은 평탄치 않았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홀라크라시가 기존의 위계적/수직적 조직문화의 한계를 극복시켜주고 수평적 조직문화로 가는 최고의 수단이라 할 지라도 극단적으로 접근해서는 기존의 조직 구성원들이 새로 생기는 조직문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새로운 조직 문화를 받아들이는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고 조직 내의 관리자나 리더들도 권한을 구성원들에게 내려놓을 있는 적응 기간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아직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포스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실패한 시도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자포스의 선례를 통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받기 않기 위해서 수평적인 기업문화 도입에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자포스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과 큰 규모를 가진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경우엔 기존 조직문화의 뿌리가 훨씬 더 깊은 만큼 신중하지 못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들로 인해서 반감도 더 클 것이고 회사 전체에 주는 영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맞게 극단보단 점진적으로 서서히 조직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동양 문화가 침투하는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라고 해도 모든 회사가 다 완벽한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IT 분야의 테크 회사들은 업무의 특성상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좀 더 자리 잡아있지만, 반면에 하드웨어, 제조업 등의 다른 분야의 회사들은 아직도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주로 자리 잡혀있다. 

그리고 IT 분야라고 해도 스타트업처럼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이상적인 수평적 조직 문화를 기대하긴 더 힘들다.

‘실리콘밸리 = 수평적 조직 문화’의 공식이 항상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재미있는 현상도 목격이 되고 있다.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들이 실리콘밸리에 점점 늘어나면서 동양적인 수직적 관료주의 위계적 조직 문화가 역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회사 내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인들끼리 모여서 중국인들의 비중이 많은 팀이 생기게 되고 그 팀의 문화는 수평적 조직문화 안에서 수직적 위계 문화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었다. 

내가 속했던 조직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조직에는 두 명의 상반된 스타일의 리더들이 있었다. 

한 명은 전형적인 동양 스타일의 리더십을 가진 중국인 리더, 한 명은 실리콘밸리에서 보는 이상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도인 리더였다. 

중국인 리더 밑에는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몰렸다. 

그러면서 중국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팀을 키우고 이끌게 되면서 동양 기업 문화에 가까운 조직문화를 만들어갔다. 

이 리더 밑에 있던 팀들과 엔지니어들은 엄청난 업무량을 뽑아냈다. 

마치 서로 누가 더 많이 일을 하나 경쟁을 하나 싶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면서 많은 성과를 올렸다. 

중국인 리더는 일을 많이 하고 성과를 잘 올리는 직원들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챙겨주었다. 

경력에 상관없이 일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해서 성과를 많이 올리면 남들보다 일찍 승진이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다. 

일을 남들보다 많이 하니 당연히 성과도 많이 나고 빠른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했다. 

전반적인 일의 진행이 위에서 계획한 일을 리더들이 지시를 내리면 밑에서 직원들이 지시에 해당하는 일을 빠른 속도로 해나갔다. 

반면에 미국인 리더는 팀들 내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워라밸을 조절해주면서 합리적인 팀 빌딩에 힘썼다. 

이 리더에 속한 팀들은 효율적인 근무 환경 속에서 다른 조직보다 빠르거나 성과를 양적으로 많이 올리지는 못 했지만 탄탄하고 건강한 팀 구축을 이어갔다. 

미국인 리더가 있는 팀들이 보인 가장 큰 차이는 조직원들의 팀과 일에 대한 만족도가 중국 리더의 팀들보다 월등히 좋았다는 것이다. 

중국인 리더가 이끄는 팀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빨리 올릴 수 있을진 몰라도 장기적으론 부작용들이 나오고 있었던 반면에 미국인 리더가 이끄는 팀은 단기적으로 보이는 성과가 상대적으로 적을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전반적으로 탄탄한 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당시 중국인 리더가 이끄는 조직에 속해 있었다. 

솔직히 처음 이 조직에 합류할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 동양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나 하는 호기심도 있었고 동양 문화의 장점들이 실리콘밸리 문화에 섞여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너지는커녕 완벽하게 수직적인 중국 조직이 되어있었다. 

중국인이 아닌 조직원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고 업무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워라벨이 완전히 무너져서 조직원들이 하나둘 지쳐가고 있었다. 

승진 티켓을 두고 서로가 경쟁을 하는 구도이다 보니 라인이 생기고 사내 정치가 생겨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안 좋게 생각했던 동양적 조직문화 단점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옆에서 보기에 안 스러울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중국인 팀 동료 A와 팀의 문화에 대해서 터 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A는 본인이 압박을 받아서도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가 원해서 본인의 욕심으로 일을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하면서 지금 본인이 맡은 일이 좋고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배우면서 팀이 성장하는데 더 많이 공헌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때문에 괜한 동료 압박 (peer pressure)을 느끼지 말라는 말도 같이 해주었다. 

실제로 A는 일을 열심히 해서 그만한 성과를 올리고 남들보다 승진도 빨리 했다.

회사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남들보다 일을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성과도 많이 올리고 본인 스스로가 가치를 증명하고 있어서 승진으로 보상을 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A는 사실 이 팀에서 없어선 안 되는 굉장히 훌륭한 인재상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 

열정을 가지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남들이 일주일에 40시간만 일 할 때 80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팀 프로젝트를 하드 캐리 한 게 단순히 동료들한테 의도치 않은 압 밥을 느끼게 했다고 잘못한 것일까? 

결코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팀의 리더들이 이를 이용해서 프로젝트 진행시키려 했던 점이다. 

A는 리더들이 표본 삼기에 가장 좋은 예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엔지니어들에게도 일을 열심히 하게 간접적으로 무언의 압력을 줄 수 있는 좋은 지렛대가 되었다. 

승진을 하고 싶다면 A를 보고 배우라는 말들은 다른 엔지니어들에게도 은연중에 하였다. 

경쟁 익숙하고 욕심이 많은 동양인들은 이들의 좋은 타깃이 되었다. 

문제는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서 끝난 게 아니라 주변 압박에 의해, 팀 분위기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서 나왔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팀 문화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리더들이 이런 문화를 만든 것에 있었다. 

승진을 미끼로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게끔 이끌어냈다. 

표면적으론 짧은 시간 동안 팀도 많이 성장했고 성과도 많이 올렸기 때문에 중국인 리더는 이런 문화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해 준 큰 원동력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주어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근면이 기본이 되는 동양적인 조직 문화를 들여와서 탑다운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팀을 키우고 많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오기만 한 조직원들이 끝날 줄 모르는 일들에 지쳐갔다. 

새로 들어온 조직원들은 강도 높은 업무량과 압박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여기가 실리콘밸리가 맞나 싶을 때가 있을 정도로 조직 문화가 변질되어 갔다. 

결국 이런 문화에 적응을 못 하고 지친 조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조직에서 중심이 돼서 문화를 자리 잡히고 조직원들을 끌고 왔던 그 중국인 리더가 갑자기 나가버린 것이다. 

욕심을 내서 억지고 끌고 가고 있던 프로젝트가 장기화되면서 시스템의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부담을 느낀 중국인 리더는 자신이 이직을 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았다.

리더가 나가자 그 밑에서 따르던 중국인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었지만 어찌 예방할 방도가 없었다.  

이런 현상이 비단 내가 속했던 조직에서만 특별히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많은 회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의 특성상 다양한 인종이 모여서 이루어진 지역이고 그중에서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인데 이들이 실리콘밸리 회사들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조직 문화, 크게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개인적은 경험은 다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곳곳에서 조화를 잘 이루어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는 회사들도 점점 생겨나고 있는 건 그래도 희망적이다. 

그리고 이처럼 조직원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서 실리콘밸리에서 융합과 조화를 이뤄가는 과정이 실리콘밸리 조직 문화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그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실리콘밸리가 외부의 인재들과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변화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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