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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Oct 10. 2021

아빠 오십 원만 줘

음력 9월 8일이 생일이다

한국에 혼자 사시는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아들!! 13일 수요일이 아들 생일이니 잊지 말고 미역국 끓여먹기 바란다."

촌사람이라 그런지 우리 어머니는 음력 생일을 챙기신다.

 

음력 9월 8일 한창 노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빨간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파아란 하늘은 높다. 공기는 곡식 익은 향과 시베리아의 동장군이 저머얼리 대기하고 있어서 춥지도 덥지도 않다. 천고마비라고 읽고 가을이라고 쓴다.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날, 추수를 하다가 낫을 하늘로 던져버리고 한걸음에 달려서 나를 보러 오셨다고 한다. 주남마을의 촌집에서 1977년 9월 8일 나는 장손,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집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눈에 아른거린다. 상위에는 가을 과일과 케이크 대신 큰 떡이 있고 친구 한둘을 초대해서 숫기없이 웃고 있는 내 생일파티이다. 나보다 더 웃고 있는 여동생과 포도 한 알을 집어먹고 계신 팥떡보다 혈색이 좋은 아빠 얼굴이 남아있다.  


어릴 때 난 참 착한 아들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조용하고, 별 반항하는 일도 없었다. 7살 때인가? 나보다 훨씬 키도 큰 태현이가 자꾸 나랑 싸우자고 한다. 별 이유 없이 키 작은 나에게 싸우자고 덤빈다. 난 작아도 태권도도 오래 했고 하체가 좋아 씨름도 잘해서 멸치 같은 태현이를 운동장 바닥에 눕혀 올라타고는 내가 이겼으니 싸우지 말자고 했다. 여하튼 울면서 집에 오는 나를 보고 아빠는 근영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태현이를 불러 때렸다. 애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고 태현이 아버지까지 와서 커질 뻔했으나 서로 화해하며 끝났던 것 같다. 아빠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순하고 여린 아들을 향한 마음을 짐작할 것 같다.


떡방앗간 하는 우리 맞은편에 문방구와 오락실 있었는데 항상 아빠한테 "50원만 줘"하고 졸라서 오락을 했다. 언제나 내가 달라고 하면 오락실 가지 말라고도 않으시고 50원을 순순히 주셨기 때문에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오락을 하고 있으면 뒤에 큰 그림자가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 재밌게 놀고 있는 아들을 쳐다보는 그 마음도 조금 알 것 같다.


아침에 아내가 불고기를 해줘서 먹고 있는데 아빠,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엄마랑 미역국에 찰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은데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가을 단풍도 너무 좋은데 이제 혼자 걷는 것도 불편해서 집에 혼자 계실 어머니 생각하니 눈앞으로 비가 쏟아진다.


이제 마흔다섯 살이다. 시드니는 월요일부터 3개월간의 락다운이 풀려서 산에도 가고 수영장도   있다. 수요일에는 아내랑 블루마운틴으로 캠핑을 다녀오려 한다. 텐트도 치고 불을 피워놓고 고기도 굽고 조금  케이크에 초도 붙일 생각이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세면서 엄마, 아빠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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