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마을 1길8
40년 전의 빛바랜 사진을 보면 부끄러워서 카메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누나 뒤에 숨어있는 내가 있다.
그리고 이 집은 돌과 흙으로 담을 쌓았고 기와로 지붕을 덮었으며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촌 집이다.
나무 마루는 얼마나 닦고 사람의 발로 비벼졌는데 반들 반들 윤이 난다.
마루에 앉아있으면 대운산의 산등성이가 야트막하게 소들처럼 휘어서 누워있고, 뒤로는 천성산이 호미 날처럼 높게 날카롭게 솟아있다.
할아버지 이수화, 할머니 황순복 님이 터를 잡은 땅이다.
저 감나무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태어날 때 심은 거라고 했으니 이 터에서 1950년쯤부터 살기 시작한 것 같다. (저 감나무는 알고 있을 테지)
아버지는 여기서 태어나서 결혼하고 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하기도 했다.
나도 여기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 태어나고 울산으로 출가를 해서 나는 줄곧 울산에 살 있지만,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는 찾아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세배도 올리고, 재롱도 피우던 집이다.
이제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한국에 잠시 나와 있을 때는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근처에 사는 누나, 매형이 텃밭에 마늘, 고구마도 심고 앞에는 수국, 아스파라거스도 심었다.
집도 깨끗하게 흰색으로 페이트질 하고 벽화도 그리고 담장도 야트막하게 허리 높이까지로 낮춰서 오가는 사람도 서로 눈인사도 할 수 있게 했다.
큰방은 나의 사무실이 되어서 4짝 미닫이 문을 없애고 책이랑 책상만 있다.
항상 앉아서 내가 글을 쓰고 칠판에 계획을 적어둔다.
어젯밤에도 해가 지고 마당에 앉아있었다.
이제 농공단지가 되어서 어쩔 때는 공장의 매연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어제는 희미한 쌀 냄새와 바람을 타고 온다.
그리고 발정 난 개구리 노랫소리가 오 세상을 가득 채운다.
하늘은 깜깜하고 가로등에 감나무가 빛나고 있고 개구리 노래가 바람을 타고 흘러넘치고 있다.
맘이 따뜻하고 튼튼해진다. 그래서 나는 여기를 나의 아지트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