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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Jan 11. 2021

여행자처럼 하루 살기

날 따라 해 봐요 ~ 요렇게! 

내가 골드코스트에서 유학을 마치고 시드니에 처음 내려와서 직장 다니면서 살기 시작한 것이 2005년이다. 물론 중간에 한국에서 5년 살다오기도 했지만 시드니에 10년을 살아서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다. 나의 20대, 30대 그리고 40대에도 나는 시드니와 함께 하고 있다. 


아주 익숙하고 매일 먹는 집밥 같은 시드니이지만 오늘은 정말 여행자처럼 매일 먹는 집밥을 외식하는 것처럼 다시 음미하며 천천히 맛보는 하루를 가졌다. 결론은 역시 최고이다. 나의 하루 일정을 공개하니 혹시 시드니에  오실 일이 있다면 날 따라하면  아주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오늘의 콘셉트는 그동안  미러왔던 것들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대략 세 가지였는데 Art Gallery of NSW 가서 새로운 전시를 확인하는 것, Newtown의 힙한 일본식 라멘집 Rising Sun 가는 것 그리고 Manly 에서 Spit까지 10km 트래킹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다했냐고? 그렇다. 다했다. 여름이라 하루 해가 생각보다 길기도 하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황가람 작가의 여행책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를 거의다 읽고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들으면서 엄마 생각에 햇빛 짱짱한 날  눈물까지 흘렸다. 선글라스도 안 가져왔는데. 별거 다했다. 혼자서 


아침에 집에서 운동화에 반바지를 입고 휴대폰은 팔뚝에 차고 주머니에는 오팔 카드(시드니의 교통카드, T머니) 그리고 귀에는 블루투스를 하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볍게 땀 흘리며 걷고 오랜만에 나온 햇살을 맘껏 받고 싶어졌다. 일요일에 쉬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기도 하고 이 좋은 날씨에 집에 있는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였다. 동방지국인답게 자연에 예를 다했다. 


집 앞 선착장에서 페리를 탔다. 30분을 파라마타 강을 따라가니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서큘러키에 도착한다. 곧장 보태닉 가든을 가로질러 Art Gallery of NSW (주립 미술관)으로 갔다. 30분 타고 20분 걷고 20분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작품 보고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혼자 여행한다 생각하며 페리에서 카페에서 글을 읽으니 맘에 더 잘 들어온다. 전혀 외롭지 않다는것을 증명하듯이 소소히 웃으며 책을 읽는다  


그러곤 다시 20분 하이드파크를 가로질러 기차를 타고 Newtown(뉴타운)의 편집샵을 기웃거리다가 일본 라멘을 한 그릇 했다. 22불짜리(2만 원) 라면을 먹으니 뭔가 배부르지도 않은데 사치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수 있는 내가 좀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혼자 돌아다니니 별생각도 다한다.   

 

다시 기차를 타고 서큘러키로 와서 맨리카는 페리를 탔다. 30분을 외항으로 달리니 요트 연습하는 돛들이 파아란 바다 위를 알록달록 장식한다. 나도 꼭 해야지.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는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언제간 맛보고 싶다. 이것도 버킷리스트에 일단 저장해둔다. 하지는 않고 버킷(바구니)에 담아만 두니 버킷이 배불러서 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청춘인가 보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게 많다. 버킷이 홀쭉해지지 않는다.  


맨리에서 스핏까지 10 km 트래킹 코스이다. 언덕과 바다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길이라 보통 3~4시간 잡는데 나는 2시간에 끝냈다. 5km 구간에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물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빈 손으로 냅다 달렸다. 역시 왕년 산악부 출신답다. 와이프랑 함께 했다면 쌍욕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이 타오르고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의 냄새와 바닷 바람이 좋다. 빈 속에 사이다 마시면 뭔가 위가 싸한 게 아프면서도 시원한 변태적인 느낌 브슷하다. 


스핏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시티로 돌아왔다. 달링하버에 들러서 맥주 Pint(500cc)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종아리가 당기고 운동화에 발 뒤꿈치가 까였는데 하나도 안 아프다. 술이 왜 이제 날 찾았냐며 아픈 상처를 호호 불어준다. 


달링하버에서 페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휴대폰 배터리도 없어서 책도 못 보고 음악도 못 듣는다. 가만히 있으니 종아리도 발뒷꿈도 아프다. 힘든 시드니의 하루 일정이다. 이 정도 소화하려면 현금 50불에 빵빵한 교통가드  그리고 1000미터 산을 거뜬하게 정상 찍고 내려와 막거리를  마실 정도의 체력이 되어야 한다.  


튼튼한 육체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항상 나를 사랑해주는 부인에게 감사하고 자연에 감사하다. 혼자 한 여행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대지와 파아란 하늘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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