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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Apr 16. 2021

아빠 생각

또 언제 오실지 아빠를 기다린다.

멀리 서쪽 하늘이 빨갛게 변하고 있다. 이제 해가 산등선 뒤로 떨어지려고 마지막 빛을 열심히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숲들을 둘러보니 나무와 버섯이 온통 형광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이제 어둑해져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뒤돌아 아빠를 보니 숲길에 편히 앉아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계신다. 나는 분주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찍고 아름다운 숲에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기 바빴다.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나와 아빠는 이미 어두워진 숲 속에서 빛나는 나무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제 집으러 가려고 트레인에 앉아 있으니 창 밖으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하늘 높이 휘향 찬란한 큰 불꽃이 둥그렇게 꽃을 만들며 하늘을 채웠다가 비처럼 흘러내리며 사라진다. 불꽃이 아빠와 나의 얼굴을 살며시 비추는데 여전히 아빠는 평안하게 웃고 계신다. 


꿈이었다. 너무 생생하고 기분 좋은 꿈이었다. 한국의 누나에게 나의 꿈 얘기를 했더니 4월 6일이 아버지 생신이었다고 한다. 이제 돌아가신 지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꿈에서 나와 함께 산에도 가고 트레인도 타고 재미있게 소풍을 하셨다. 


참 불쌍한 사람이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고 이겨내려고 노력하셨으면 넉넉지는 않아도 재산도 건강도 챙길 수 있으셨을 텐데 왜 자포자기하며 사셨을까? 칠순잔치로 아들이 있는 호주 시드니에서 다같이 만나자고 했었는데 조금만 더 살아계시지. 돌아가실 때까지 십 여년을 술과 불평으로만 지내다가 하필이면 코로나로 나도 옆에 없을때 하늘 나라도 가셨다. 


어릴 적 멀리서 아빠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나한테 버스 정류장 가서 아버지 친구를 모시고 오라고 시키곤 하셨다. 버스가 도착하고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람들 중 "네가 상희 아들이지?"라며 성큼 다가오시더니 앞장서라고 하신다. 그만큼 똑같이 생겼다. 내 기억으로도 아버지는 키 170 정도에 몸무게 70 정도 건장한 체격에 코도 오뚝히 얼굴의 중심을 잡고 눈도 눈썹도 또렷하고 턱선도 날렵하니 잘 생기셨다. 


내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아빠와 아들이 다정하게 대화도 하고 캠핑도 다니고 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요일이 되면 울산에서 경주 불국사에 온천을 하고 보문단지를 드라이브도 하기도 했고 울산의 정자나 방어진으로 회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었다. 가족회의를 하려고 돌아가며 할 말 없는데 자꾸 의견을 내라고 시키던 기억도 나고 오토바이에 5명이 타고 울기등대로 가던 기억도 흐릿하게 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랑 있으면 서먹하기도 하고 매일 술만 먹고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증오하기도 했었다. 돌아가시니 이제 조금씩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독하게 맞서 싸우지. 맘이 여린 사람이 세상의 풍파에 눌려서 그냥 덧없이 갔다는 생각 하니 눈물만 흐른다. 혼자 친구도 없이 인생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도 생일 되어 나를 찾아와 살아생전 같이 하지 못했던 여행을 꿈에서 평화롭게 잘 놀다가 가시니 맘이 한결 편안하다. 장남이자 외동아들인데 코로나 때문에 임종도 못 지켰는데 멀리 호주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 생전에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을 꿈에서라도 나누기를 바라며 다음에는 어떻게 만날까 아빠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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