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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May 24. 2021

77 살롱의여덟 번째이야기

시드니에 사는 여섯 남자의 이야기

남반구 호주 시드니에 5월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일 년 동안 국경이 막혀서 비행기와 외국인 관광객은 올 수 없지만 가을은 그리고 어느새 겨울은 성큼성큼 코 앞에 와 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서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이 더욱 고맙다. 영어로는 크리스피 (Crispy)라고 표현하는 초겨울의 공기이다. 빠싹빠싹한 빵을 깨물 때 빵 가루가 부스러지면서 경쾌한 소리를 내는 크리스피한 그런 공기이다. 


 1980년대의 5월은 황사로 외출을 걱정하는 지금과는 달리 아주 청명하고 또렷한 세상이었다고 나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니 카네이션과 선물을 고르려 문방구에 들락거리고 백일장과 미술대회도 많이 했었다. 꽃도 피고 날씨도 따뜻하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보는 세상은 더욱 행복하고 따뜻하였다.


시드니 어번져스, 여섯 남자의 무한도전 같은 77 살롱의 우리들은 아빠로서 어릴 적 5월 가정의 달에 걸맞은 단란한 가족의 모습과 추억을 선물하고자 가을 소풍을 준비하였다. 이번 살롱에는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여서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있는 네판댐 (Nepean Dam) 으로 가서 바비큐도 하고 추억의 보물 찾기도 하였다. 


아침 11시가 되니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승범, 채룡, 남윤, 근수 그리고 영민이 순서로 도착하였다. 다들 5분 간격으로 도착하였고 대연이의 시계는 우리와 조금 다르니 그려러니 한다.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될 테이블과 가제보를 설치하고 캠핑의자를 쭉 펼치니 아담하게 우리의 아지트가 만들어졌다. 앞은 물은 흐르고 위에는 청명한 하늘이 포근히 감싸고 있다. 


마담으로써 살롱의 취지를 엄마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휴대폰에 적어 연설을 준비하였으나 짹짹거리는 이름모를 새 소리만큼도 집중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여 빨리 끝내도록 한다. 대충 살롱은 술을 먹고 놀지만 나름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모임이니 한 달에 한 번씩 눈치 안 보고 놀겠다는 내용을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계몽사상과 어설프게 연관시키려 했다. 여하튼 한마디만 하겠다던 거짓말 같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들릴까 봐 빨리 끝냈다. 


그리고 가족모임은 처음이라 각자 가족 소개를 간단히 하고 BBQ를 시작하였다. 르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전공하였던 승범이 가족 덕분에 장비가 좋다. BBQ는 성실성만 있으면 된다. 불판 앞에서 눈을 안 떼고 자리를 지켜 적당히 뒤집어 주는 성실성, 거창한 2년의 파티시에 경력은 사치이다. 그래도 르꼬르동 블루는 "젓가락질이 틀리다."면서 분위기를 띄워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웃긴 말이다. 치맛살, 항정살, 삼겹살 부위별로 골고루 많이 먹어준다. 어묵탕 국물도 한 컵씩 해가면서 김치와 샐러드도 밖에서 같이 먹으니 더욱 맛난다. 


배도 부르고 오늘 장소를 섭외한 영민이의 안내를 받으며 네판 댐 산책을 나섰다. 물이 흘러내러 가는 게 물고기의 비늘처럼 동글게 둥글게 내려간다. 나도 호주에서 댐을 처음 봤으니 아이들도 역시 10년의 인생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정하게 댐 길을 걸으면서 부자간의 정이 쌓이고 부부간의 사랑이 깊어간다. 한걸음 한걸음 사랑이 만들어진다. 


이제 오늘의 2부 순서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던 게임들을 다시 꺼내였다. 보물찾기 게임부터 밀가루 속 사탕먹기, 양파링 먹기 그리고 OX퀴즈까지 했다. 해가 저물어가는데 가족오락관의 허참만큼이나 진행을 잘하는 허남윤과 푸짐한 상품들로 두세 시간을 6 가족이 하나가 되어서 나이를 떠나 세대를 떠나서 웃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서로를 배웅하고 또 다음을 기약하였다. 나는 영상과 글로 오늘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행복한 5월 가정의 달 소풍이었다. 오늘이 정말 그리울 날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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