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우리 집에는 밥 잘해 주는 예쁜 누나 있다.

by 시드니 이작가

3년이나 지나 "왠 뒷북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드니의 락다운(Lock Down)과 언젠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욕망으로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를 정주행 했다. 무려 16회이다.


드라마를 본다고 눈치가 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많나? 안 바쁜가? 하고 물어볼 것 같다.


흙으로 도자기를 굽고 인물이나 자연의 순간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나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편집) 하여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작업이 흥미롭다. 또 대한민국의 수출품 중에서 내가 일조할 수 있는 것이 자동차, 반도체는 아닐 것이고 문화 콘텐츠가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인다.


한류의 파도를 타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채널로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드라마를 수출할 수 있고 그래서 유통기한도 더 길어진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다.


김은 작가 극본에 안판석 감독의 연출이다. 김은 작가는 바람의 언어(2014)로 등단한 소설가이고 드라마 시나리오는 처음이라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반면 안판석 감독은 봄밤(2019), 하얀 거탑(2007), 짝(1994)을 연출한 MBC 출신 베테랑이다.


어릴 적부터 가족처럼 알고 지내는 누나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서준희(정해인)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의 사랑 이야기이다. 손예진이 주연이면 북한 사람이든 이혼을 했던 상관없이 달달하게 로맨택 코메디로 만들어버리니 기대한 대로이다. 빗방울을 겨우 피해 주는 우산 속에서 귀엽게 웃지만 맘속엔 남자가 꿈틀거리는 정해인을 보고 있으면 심장 쫄깃쫄깃하던 내 연애시절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한 시간이 훌쩍 지간다.


찐 누나, 찐 절친 같은 서경선(장소연)과 아들처럼 준희를 챙기다가 딸과 연인 사이가 되니 돌변하는 현실 엄마(길해연)의 연기가 찰져서 재미를 더 해갈 무렵 뜬끔없이 탬버린 걸, 윤진아의 직장 내의 성추행 사건으로 이야기가 늘어진다. 2018년 한국사회를 흔들어놓았던 미투 사건의 영향인지 드라마를 16회를 채우기 위해 짜집기 했다고 의심이 될 정도로 엉성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이 짧게 사건을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신인 극작가라서 연출이나 외부에서 시키는 대로 그냥 한 건가 라는 의심이 들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으로 16회를 고집하니 끝 5회 분량은 마무리를 하기 위해 억지로 봐주었다.


아무튼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말이 유행하고 밥 잘 먹는 그냥 누나가 생기고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였다. 비 속에서 만나고 비 속에서 기다리고 만나는 드라마이다. 비 오는 날이면 비를 더욱 빛나게 해 줄 OST (something in the rain, Rachel Yamagata)를 듣는다. 지금 내 옆에는 밥 잘하는 예쁜 누나가 해주는 참기름 냄새가 방문 틈새로 세어 들어온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는 밥 잘하는 예쁜 부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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