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한 나라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자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하늘의 별 따는 것만 제외하곤 자기 영토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자와도 같다. 신하와 시민은 왕이 죽으라 하면 죽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산해진미를 대령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한 아버지에게 자기 아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 누가 있겠는가. 왕의 말이 곧 법이고 생명인 것을.
나라에 도적과 절도가 많아지자 어느 날 왕이 강력한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겠단 결심을 하고 모든 백성을 불러 놓고 선포했다.
"내일부터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적발되는 사람은 두 팔을 자르겠다."
신하를 비롯하여 백성들은 왕의 말을 듣고 긴가민가했다.
정말 죄를 저지르면 두 팔이 잘리는 것일까? 수군거리며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다음 날 아침 왕에게 첫 법 집행을 하게 될 강도를 붙잡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의 명령, 즉 범죄자의 두 팔을 자르는 법이 시행될 사건이었다. 왕은 본보기로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범죄자의 팔을 자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백성과 신하들을 불러 법 집행을 하게 되었다.
왕은 멀리서 끌려오는 범죄자를 응시했다.
왕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범죄자가 점점 가까워지고 얼굴이 선명해질수록
왕의 표정과 눈빛은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갔다.
신하들은 그런 왕의 표정을 보고, 어리둥절했지만
그들도 범죄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 난 후 왕과 같은 표정이 되었다.
범죄자는 임금의 첫째 아들이었다.
침묵을 깨고 왕이 말했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네가 도대체 왜 도둑질을 하였느냐"
첫째 아들이 말했다.
"막내아들에겐 멋있는 검을 주시더니 왜 저에겐 허름한 액자 하나를 주신 겁니까."
왕은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아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말하였다.
"그게 그렇게도 싫었느냐. 그래서 동생의 검을 훔쳤느냐."
아들은 원망하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누가 봐도 전 무술을 좋아하고, 용맹하지 않습니까. 그 검은 제가 받아야 할 선물이었습니다. 아직도 절 그렇게 모르십니까"
왕이 말했다.
"너의 팔을 잘라야 한다. 그것은 어제 모든 백성 앞에서 한 약속이고 법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피식 웃으며 확신하는 듯한 오만함으로 왕에게 답변했다.
"아버지는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다시 그 법과 약속을 취소해 주십쇼"
"너는 그 액자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느냐"
"몰랐습니다."
왕은 체념하듯 아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다음 왕이 될 자에게 넘겨주는 증서와 같은 그림이다. 넌 왕의 자리보다 검을 더 탐냈구나."
아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말투로 왕에게 소리쳤다.
"그럼 진작에 말씀해 주셨어야죠! 도대체 왜 이런 사실을 말씀 안 해주셨습니까! 그럼 제가 다음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면 더욱더 팔을 자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어서 취소해 주세요 아버지"
"법과 약속이란 개념은 생명과도 같다.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때 죽음이 임하는 거와 같다... 넌 아직 법과 약속에 대한 중요성이 얼마나 엄격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구나"
"너에게 법이 무엇인지, 약속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왕은 결국,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르고, 아들의 한쪽 팔을 잘랐다.
모든 신하와 백성은 아들의 두 팔을 자르지 않은 왕의 결정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은 머지않아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백성의 존경을 받았으며, 나라를 더 부강하게 이끌었다.
한쪽 팔로 말이다.
훗날 왕의 아들은 자기 두 아들에게 똑같이 검과 액자를 주었다.
어떤 사실도 말하지 않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