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성 부도(秋聲賦圖)』에 부쳐
말년의 김홍도가 그린 『추성 부도(秋聲賦圖)』는 시의도(詩意圖)다. 「추성부」는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가 가을바람소리를 지은 장문의 서정시를 말하는데, 그림 왼편의 글씨 『추성부도』 제시(題詩)를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추성부도> 부분도( 맨 왼쪽 )
구양수(歐陽修)가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찟 놀라서 귀 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 지고 쓸쓸한 바람 부는 소리 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하였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물건에 부딪쳐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동자(童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 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했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색(色)은 암담(暗淡)하여 안개는 날아가고 구름은 걷힌다. 가을의 모양은 청명(淸明)하여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중략)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아! 초목은 감정이 없건만 때가 되니 바람에 날리어 떨어지도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는 존재이다. 온갖 근심이 마음에 느껴지고 만사가 그 육체를 수고롭게 하니,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이 흔들리게 된다.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게 되어서는, 홍안이 마른나무같이 시들어 버리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버리는 것을. 금석(金石) 같은 바탕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죽이고 해하고 하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하는가? 동자는 아무 대답 없이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다. 단지 사방 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 찌륵 들리는데, 마치 나의 탄식을 돕기나 하는 듯하다.
1805년(순조 5) 동지 후 3일 김홍도가 베끼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김홍도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1800)으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었다. 1805년(순조 5)은 그가 죽기 바로 전 해이므로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으로 추정한다. 이때 나이 61세다.
김홍도(1745-1806) 최고 전성기는 연풍현감(1792-1795)으로 나간 3년일 것이다. 김홍도는 총 3번 어진을 그렸고 연풍현감은 그 공로로 정조가 특별히 내린 관직이었다. 연풍은 충북 괴산을 말하고 현감은 고을 수령으로 종 6품에 해당되는 지방관이다. 조선시대 종 6품이면 2-5% 이내의 최상류 층에 해당된다. 김홍도는 외가 친가 모두 무관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조부의 경제력으로 산 건달이었다. 김홍도가 안산에서 산 30년도 그와 비슷했다고 그의 스승 강세황이 전한다.
부분도 (왼쪽 2)
달무리가 낀 히므끄레한 달, 갈필(마른 붓질)로 처리한 바위와 산등성이 그리고 가을바람에 허리가 휘는 나무며 어지러이 날리는 성긴 낙엽 등이 김홍도의 내면을 짐작케 한다. 왼쪽으로 둥치 굵은 나무가 두세 그루, 달 아래는 초가집 한 채가 대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대숲의 바람소리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메마르고 성근 수풀과 함께 산이 그려져 있고, 화면 가운데 초가집 둥근 달창 안에는 구양수의 모습이 있다. 주인이 책을 읽다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가서 살피라 하니 동자가 대답한다.
“하늘에서 달과 별은 맑게 빛나 천하를 비추고 사방은 고요한데 소리는 수풀 사이에서 들립니다.”
동자는 수풀의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고, 마당에는 두 마리 학이 목을 빼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마른 낙엽들을 정처 없이 떨구고 있다. 전체적으로 스산한 풍경, 우리나라로 치면 10월의 풍요를 넘어선 11월 초입의 풍경이라고나 할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11월만 되면 밀린 숙제를 못 한 사람처럼 마음이 초조하다가 12월이 되면 포기하고 겨울을 맞았던 숱한 정황들이 스쳐 지나간다. < 추성부>에서 구양수의 시정은 구비구비 펼쳐지지만 요즘 속도 취향에 맞추면 세 문장으로 족할 것이다.
- 얘야, 무슨 소리냐
- 바람소리입니다
- 아니다, 세월이 가는 소리다
김홍도 그림은 40대까지를 전기, 50대부터를 후기로 나눴을 때, 전기는 "단원 풍속화첩" 25점으로 설명될 수 있고, 후기는 자연화를 그린 "병진년 화첩"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풍속화는 후기로 갈수록 도인적 풍모를 보이며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자연화는 세월이 더할수록 흐르듯 유려한 필치로 내 정신을 한껏 고양시켜준다.
김홍도의 풍속도에는 어둠이 없다. “ 타작”을 보면 떠꺼머리총각 한 사람만 불만에 찬 표정이고 한쪽에 돗자리 깔고 곰방대 물고 졸고 있는 감시자 마름이 있음에도 모두 흥겹게 일하고 있다. 아마 저 총각은 나중에 동학군이 되지 않았을까?
“새참” 그림에는 아기 밥그릇도 크고 모두 노동의 즐거움에 차 있다. 정약용이 이런 김홍도 풍속화를 내보였더니 농부가 쓱 밀었다고 한다. 농부 왈,
“ 이건 우리 생활이 아니야”
이는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수선화 꽃을 말먹이로 주는 농부의 무식함’에 혀를 찼다는 일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김홍도 <화묘농접도>, 종이에 채색, 30.1*46.1, 간송미술관
이 그림은 생일선물용 그림이다. 고양이는 70세, 나비는 80세를 뜻하니 70세 생일에 80세가 될 때까지 장수를 축수하는 그림이다. 호랑나비를 저렇게 크게 그린 것은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바위는 굳건함을 뜻하는 장수의 의미, 패랭이꽃은 장미의 원조가 찔레꽃이듯 카네이션의 원조 토종꽃으로 청춘을 뜻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제비꽃이 등장한 것은 꽃말처럼 "뜻대로 되기를' 의미를 담기 위해서 인 듯. 세월이 좋을 때는 만물이 화평해 보이는 법이다. 김홍도는 49세에 득남도 하고 벼슬도 했으니 삼라만상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이 그림은 제작 연대가 안 나와 있지만 행복의 절정에서 그렸을 것이다.
5% 이내의 특권층이 보는 현실이어서 그런가. 내가 본 조선시대 고양이 중에서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양이다. 털빛도 황금색으로 뽀얗다. 그만큼 화가의 눈이 풍요로왔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단원은 요즘 말로 국정감사에 걸려 3년을 끝으로 관직에서 하차한다. 그 시기 단원이 한 일을 보면 말 타면 마부 부리고 싶은 졸부 행위와 비슷했다.
매화그림을 거친 필치로 그리면 30냥( 쌀 한 가마 2냥)을 받는데 그는 이 수입을 20냥은 매화나 분재를 사고,. 8냥은 약주 사서 매화 감상파들과 놀고 2냥은 생활비로 내놓았다 한다. 5% 상류층 답게.
요즘은 20:80이라던가. 20% 안에 들기 위해 발아래 널려진 행복의 조각들을 못 보는 사람들이 많듯이 김홍도도 정조의 총애를 받는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로 만족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중인 신분이었으니 당시 사회분위기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김홍도는 결국 감사에 걸렸다. “일성록”에 기록된 암행어사의 보고서에는
- 향리를 달달 볶고( 촌지가 양에 안차서?)
- 중매를 일삼고( 중매 턱이 짭짤했겠지)
- 매사냥이 청년을 동원했으며( 공직자가 골프 친 격)
등이 죄목으로 되어 있다.
김홍도 그림은 벼슬 전과 벼슬 후가 같은 소재여도 퍽 다르다. 소가 밭을 가는 그림도 초기에는 두 마리 소가 화전같이 단단한 땅을 하늘로 뻗치듯 기운 써서 갈고, 후기에는 한 마리 소가 여유 있게 옥토를 가는데 주위 산수가 빼어나고 선비들은 나무 그늘에서 유유히 잡담하고 있다. 밭가는 농부보다 주위 산수 묘사가 더 빼어나고 나뭇가지에 비해 새집도 새도 실하다. 자신의 물적 토대를 넘어서서 사고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가 보다.
김홍도는 뛰어난 필치, 특히 자연이나 사람에 대한 순간적 포착이 뛰어난 화가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 가끔 외출 나올 때 보면 붓이 춤추는 것 같다. 그러나 선비 풍모의 인간은 아니었나 보다. 스승 강세황의 평가에 따르면 감홍도는 시, 서화에 다 능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한다.
김홍도 <습득도>, 수묵담채, 21.5*15.2, 연대 미상, 간송 박물관
습득이란 중국의 행각승으로 구걸하면서 도를 닦던 사람이다. 김홍도는 말년에 불교에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절에서 치성을 드려 49세에 아들까지 얻어서 불교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림을 팔며 연명하던 시기의 그림이라 추정하고 있다. 단숨에 그린 듯한 날렵한 필치며 짚신의 표현, 무르익은 글씨 모두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늦둥이 아들의 한 달 치 교육비도 쩔쩔매며, 병마에 시달리는 말년의 김홍도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가을바람만 쓸쓸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