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복의 그림들
데이비드 버스의 " 욕망의 진화"를 읽은 후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불가해했던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 수업 과제로 <김홍도와 인물화>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발표 날짜는 다가오는 데 김홍도가 그린 인물은 정형화되어 특징을 잡아내기가 힘들었고 , 비교하려고 모아 놓은 신윤복의 그림에는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것이다.
김홍도(1745-1806)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527호)
마음품이 넉넉할 것 같은 주모, 당연히 옆에는 칭얼대는 아이가 있다. 거나하게 먹고 마신 보부상은 포만감에 겨워 배를 열어젖힌 채 동전 주머니를 열고 계산하려는 중이다. 오른쪽 객은 갓 모양으로 보아 양반인데 체모가 무너지는 18세기 후반 조선사회 분위기답게 국밥 그릇을 기울여 바닥에 깔린 음식을, 아마 국물일지도? 수저에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도도 깔끔하고 주막 인심이 펑퍼짐하게 흐르는 그림이다.
때는 바야흐로 작약과 장미가 다투며 피어나던 5월, 발표날은 다가오는데 김홍도 인물들은 드디어 지겹기 시작했다. 반면 신윤복의 인물들은 색기가 넘쳐흘렀다. 금쪽같은 시간을 신윤복 필력의 섬세한 선, 색조의 짜릿함, 세련된 구도에 몸과 마음이 뺏기고 말았으니 내 발표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당연히 혹평을 받았다.
신윤복, 주사건배, 종이에 채색, 18세기 말 ~19세기 초, 28.2*35.2, 간송미술관,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신윤복의 주막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주사거배(酒肆擧杯)는 직역하면 ‘술집에서 술을 들다’ 지만 서서 마시는 술집을 말한다. 선술집의 원래 뜻도 '서서 마시는 술집'이다. 요즘 말로 테이크 아웃인 셈이다.
붉은 철립에 노란 모자를 쓴 가운데 남자는 신윤복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사내다. 붉은 옷은 하급 관청 관리인 별감의 전형적 복장이다. 별감의 업무 중에는 관기, 기생 관리도 들어 있어 구전을 뜯고 마음먹으면 돈깨나 만지는 직업이다. 주모 여성은 남편도 자식도 있는 여자다. 저고리 남색 끝동은 남편이 있는 경우고 , 깃과 고름의 자주색은 자식이 있는 여자의 복식이다.
저 주막은 술만 파는 곳이다. 두 개의 가마솥은 술을 데우는 용도인데, 그러니까 탁주가 아니라 따끈한 청주를 파는 것이다. 왼쪽 끝 어린 남자는 '중노미'라 부르는 술값 계산을 도우는 사람으로 보통 기둥서방 역할을 겸한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여차 하면 따질 기세다. 맨 왼쪽의 남자는 의금부 하급관리 복장이다. 퇴근 후 한 잔 걸치러 온 것일까. 아마 물주는 옥색 두루마기를 입은 뒷모습의 사내일 것 같다. 집안 송사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말단 관리를 단골로 두려면 주점 장소도 중요할 것이다. 김홍도 주막에서 보는 상민들이 사는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 근처가 유리하다. 도화 꽃은 분홍빛으로 피어나고 주모는 당시 첨단 빛깔인 남색 치마를 갖춰 입고 낭창낭창한 몸을 놀리며 따라주는 술을 마시러 사내들이 몰려가는 장면이다.
김홍도가 정조의 특별한 총애 속에 있었다면 신윤복은 생애 말미가 오리무중으로 오세창(1864-1953)의 《근역서화징》에 나타난 기록이 그에 대한 유일한 정보다.
신윤복, 저 입부(笠父), 호 혜원(惠園), 고령인(高靈人), 첨사(僉事) 신한평의 아들, 화원(畵員),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신윤복은 1758년 신한평과 홍천 피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정조와 순조 시대에 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도에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하는데, 의궤를 그리는 데 참여한 적이 없고 화원에도 기록이 없다. 사회비판 화가이자 에로티즘 화가라는 후대의 평가는 화원을 다니지 않고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부친 신한평은 정조 시대 도화서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으며, 영조, 정조, 순조 시기를 거쳐 세 차례 어진을 그리는 데 참여하고 의궤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당대 명망 높은 화원 중 한 사람이었다.
신한평의 남겨진 그림들을 보면 아들 신윤복에 못 미친다. 그래서 신윤복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신윤복이 활동하던 당시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중인 계층 및 서민 지주들이 성장해 부를 쌓고, 경제적인 이유로 몰락하는 양반들이 등장하면서 조선의 계급 및 지배 이념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이런 풍속의 변화로 중인 및 서민 계층의 문화가 발달하면서 판소리, 소설, 시조 등에서 성적 표현이 잦아지고 박지원, 이옥 같은 걸출한 문학인이 나왔다. 문학이 먼저 시대를 열고 그림이 뒤따라 간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의 빨래터에도 맨 왼쪽 젖먹이 젊은 엄마가 눈에 띈다. 아직 젊은 몸이라 칭얼대는 아기보다 자신을 가꾸는데 더 열중하고 , 아기는 엄마 젖을 움켜쥐며 관심을 호소(?)하는 김홍도다운 그림이다. 저고리 밑으로 비어져 나온 젖무덤이 팽팽하고 곱다. 그러나 하체는 허술하게 그렸다. 앳된 얼굴이나 둥근 가슴을 보면 허벅지 또한 통통 했을 것 같은데,
젊은 엄마를 엿보는 사내는 양반이랍시고 노골적으로 못 보고 부채를 방패 삼았다. 그러나 그뿐, 새댁의 비어져 나온 가슴도 나그네의 훔쳐보는 시선이 아니면 성적 느낌이 들지 않는다. 김홍도에게 여성의 가슴은 젖을 먹이는 의미가 절대적이었나 보다. 여성성보다 모성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은 그 사회의 생산성 요구와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신윤복 빨래터, 종이에 담채, 28.2*35.6, 간송미술관,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신윤복의 빨래터는 근대회화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색조부터가 산뜻하다. 가는 선묘를 기본으로 하여 내면 심리를 나타낸다. 옥색 물이 흐르는 개울가, 녹색의 농담으로 표현한 바우 둔덕과 초록 치마의 여인의 갖춰 입은 속옷. 가체머리를 보면 꽤 재력 있는 양반집 여성들이다. 저 가체 머리 하나가 기와집 한 채 값이 될 때도 있었다니까.
조선 후기 여성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두는 온갖 금기와 제약들, 멋을 향한 본능은 머리채에 매달리게 된다. 기록에 시아버지가 갑자기 부르니 고개를 급히 쳐들다가 가채의 무게에 목이 부러진 며느리 얘기가 나올 정도다. 조정은 수시로 '가체 금지'를 외쳤지만 자주 언급된다는 것은 실행이 안된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욕구와 본능은 어디로든지 발산돼야 하는 것이다.
나그네의 시선은 당연히 머리를 땋는 젊은 여성에 꽂혀 있다. 모녀 3대, 혹은 모녀와 하녀의 관계일까. 딸인 듯 한 젊은 여성의 윤나고 풍성한 머리채를 보면 가발을 몇 개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옆에 가체가 놓여있으니 조선 여성의 멋 내기는 온통 머리에 가 있었나 보다. 초록 치마 여성이 두드리는 빨래방망이 소리도 온갖 억압의 스트레스 해소에 퍽 도움이 되었으리라.
이 남자의 뒤태를 보라. 여성이 남장했다고 해도 믿을 포즈다. 물고기 등처럼 매끈하고 유연한 이 사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신윤복이 동성애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신윤복 단오풍정, 종아에 채색, 18세기 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오랫동안 큰 명절로 여겨 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단오명절이 있었다.
맨 왼편의 여성의 단단한 허벅지를 보라. 진분홍색 젖꼭지와 함께 성적 매력을 한 껏 뽐내고 있다. 이 여성들은 그 시대의 내로라하는 기생들, 요즘 말로 탑 텔런트들이다. 맨 오른쪽의 아낙이 이고 오는 보따리 짐 속에는 술병이 나와있다. 목욕하고 한 잔 할 수 있는 여흥을 즐길 수 있는 신분. 이들이 패션을 선도하면 양반가 여성들이 슬슬 뒤따라갔다고 한다. 팔에 꽉 끼는 저 저고리는 어떻게 입고 벗었을까.
숨어서 훔쳐보는 사람은 어린 중으로 당시 스님들의 세속화를 은근히 비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사회에 대한 반기가 숨어있다. 이 그림의 중심은 그네 타는 가지 빛 반회장 노란 저고리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여기도 서열이 있다면 탑 중의 탑이다.
조선 후기 이옥(이鈺 1760-1812)은 사대부 신분으로 남녀 간의 정을 시로 써 정조의 미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고 인간만사는 음양의 조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 당시 실학파들의 생각보다 더 나가 생활 문체, 효용론적 문체를 구사하였다. 이런 사회 일각의 분위기 속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나왔다.
莫種鬱陵桃 울릉도 복숭아는 심지를 마세요.
不及儂新粧 내가 새로 화장한 것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莫折渭城柳 위성의 버드나무일랑은 꺾지 마세요.
不及儂眉長 내 눈썹 길이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이옥의 시)
단오풍정 부분도
네 명의 여성 표정이 제각각이다. 서로 상대방의 몸을 훑어보고 질시하는 눈빛이 되기도 한다.
歡莫當儂髻 그대여 내 머리에 닿지 마세요.
衣沾冬栢油 옷에 동백기름이 묻는답니다.
歡莫近儂脣 그대여 내 입술을 가까이하지 마세요.
紅脂軟欲流 붉은 연지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니까요
(이옥의 시)
훔쳐보기의 시선들
그때의 나는 몸의 성적 에너지가 충만한 40 대 초반이었음을 이제 알게 된다. 지금도 사람에게 받은 감동은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남 녀를 불문하고 섹슈얼리티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젊어서는 오히려 마른 나뭇가지 같이 건조하고 관념적이었던 내가 뒤늦게 성적 매력이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아~ 몸의 소중함을 놓쳤던 지난 시간들이여
" 욕망의 진화" , 이 책은 읽기의 고통만큼 유익했다.
모든 민요가 전승되어 살아남기까지는 성적 은유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문득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당대에 유명한 것도, 제주 심방(무당을 이르는 제주어) 안사인이 그렇게 용한 심방이 된 것도 그 사람 자체가 갖는 섹시함에 걸맞은 노래 실력 춤 실력이 갖춰져 있어서 라고 추측한다.
현실의 나는 오늘도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 신세를 지고 왔다.
동적인 몸짓, 구수한 해학, 날렵한 필력 등은 김홍도 풍속화의 큰 매력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 진수는 자연화에 있었다.
이 그림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하늘 높이 휘영청 뜬 달이 아니라 우리 가슴께로 내려온 달, 정중앙의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성근 나뭇가지. 농담으로 표현된 달빛에 젖은 가지들. 보는 이의 마음에도 소슬한 바람이 분다.
그해 5월, 40대의 나는 김홍도 인물화를 살펴보려다 신윤복에 잠시 빠졌고 김홍도의 자연화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