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의 생이여

- 어영 바다에서

by 양경인


유목민처럼 여러 도시를 떠돌다가 십여 년 만에 가보는 ‘어영’(*제주시 해안의 지명)의 바다는 해무(海霧)에 싸여 있었다. 미세한 포말에 스칠 듯 말 듯한 갯 냄새는 물큰한 정으로 다가왔다.

‘너 왔구나, 살아서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구나, 살아있다는 것이, 참 좋지?’

나직이 다독이는 냄새, 며칠 간의 고향 방문에서 내가 살아서 제주에 왔음을 가장 실감 나게 했다.


해무가 옅어지며 바다는 윤곽을 드러냈다. 바위 위로 날아드는 바다새는 갈매기일까. 택배 부치러 들어간 우체국에서 컴퓨터로 처음 본 강요배의 <생이여>가 시야에 겹쳐온다. 그때 나는 예기찮은 복병 앞에서 비칠대고 있었다.


강요배 <생이여>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62 2007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그러했을까, 그러나 그때 감정은 어줍은 이십 대의 방황만큼이나 다분히 관념적이었다.

삶의 고단함과 지난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 만물의 생명은 찬미받아 마땅하다는 지극한 울림으로 다가왔던 그림, <생이여>는 내게 좁은 시야의 투망에 갇혀 허우적대지 말라고, 삶의 포커스를 더 넓게 높게 가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때 예술은 내게 위로를 넘어서 구원에 가깝다.


생활고에 지친 어머니가 죽으려고 올라섰던 바위는 어디쯤 일까. 검은 밤, 부서지는 파도에 버선발을 적시며 인기척이 없는 높은 바위를 찾아 허둥댈 때 뒤를 바짝 따라오던 낯선 할아버지. “애기 어멍, 무슨 사연이사 실테주마는 살아사 혀여 (아기 엄마, 무슨 사연이야 있겠지마는 살아야 해) … 남의 양석(양식) 져서 다니는 몸인 것 닮은 디 …”

생의 이편으로 끌어주시던 바닷가 노인의 음성에 다리 맥이 풀려 주 질러 앉아 통곡했다는 어머니는 불은 젖을 감싸고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를 달래어 보낸 그 바다는 용두암 부근이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줄줄이 딸을 낳았다. 넷째 딸이 태어난 방구석에 시멘트 봉지에 싸서 묶어 둔 태(胎). 일주일이 지나도 누구 하나 처리해 주는 사람 없었다. 첫딸은 그래도 시어머니, 남편이 함께 조상 밭에 태워 묻어주었지만 계속 딸을 낳자 아버지도 태 처리에 무심해진 모양이다. 열흘 째 되는 날에 태를 싼 꾸러미를 안고 영등 바람 몰아치는 바다로 간 어머니가 ‘다시는 제게 생명을 점지하지 마시라’고 용왕님께 빌었다는 바다는 또 어디쯤이었을까.


밀물에 잠긴 여 (이상언 사진)

제주를 떠나 살면서 지리산 자락 섬진강 주변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 잔잔하고 영롱하던 비췻빛 물색을 보며 이 강을 보며 자란 사람들은 성격이 온순하고 느긋할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빛깔인 적이 없는 제주바다는 강물과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어릴 적 ,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하는 동요를 나는 외국 노래처럼 불렀다. 제주에는 강이 없다. 내창(건천) 물이 흘러가 바다가 된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은 바닥이 물이 잘 빠지는 현무암이라 바다까지 가기 전에 말라버리는 것도 있지만 내가 겪은 제주바다가 강물이 주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였다.

내 유년의 바다에 ‘잔잔한’이란 ’라는 말은 없었다. 솟구치거나 뒤집히거나 끊임없는 움직임의 파동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


강요배 <흰 바다> 캔버스에 유채 97.0* 162.2 1993


제주에서 사는 동안 바다는 한 번도 다정하게 나를 대해 준 적이 없었다. 8살에 엄마 몰래 바다 가서 썰물에 보말(*고동의 한 종류)을 정신없이 잡다가 발목을 스치는 밀물의 거침없음에 당황해서 돌아보니 바위에 걸쳐 둔 노란 스웨터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열 살 무렵 , 이호해수욕장 얕은 물에서 놀다가 조금만 조금만 들어가다가 집채 만한 파도에 쓸려갈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고 ‘죽는 게 이런 거구나’ 의식이 가물가물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서서히 물러가곤 했던 바다. 그때 바다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았다.


바다는, 내가 아는 제주바다는 그 자체의 위엄과 어떤 상징으로 있다. 젊어서는 비상 의지를 가로막는 완고한 경계선으로 . 때로는 막막함과 회한으로.


북촌리 다려도(이상언 사진)

성산포 바다에서 ( 사진 김효정 )


내가 생(生)이여! 하며 감읍하던 그림 제목의 속뜻은 ‘새들이 모여드는 여’라는 뜻의 ‘생이(鳥)여’ 였음을 화가를 만난 후에 알았다. 제주어로 새는 '생이'라고 한다. 들에 퍼져있는 찔레꽃은 '생이곤밥(새들의 쌀밥)'이라 했다. '여'란 바닷속에서 돌출한 바위를 말한다. 여가 있는 곳에는 전복 소라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물살도 꺾여 고기들도 많이 모이는 곳이다.


재건한 북촌리 마을과 다려도(이상언 사진)


지난겨울 , 북촌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90 넘은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하는 말씀,

- 죽는 건 아깝지 않은데 저 다려도를 내버려 두고 갈 생각 하면 그게 을큰해 (아쉬워)


1948년 겨울 마을 전체가 불에 타 구석기시대로 돌아간 북촌리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려도라고 했다. 조천면에서도 제일 박토인 북촌리 토지, 그런 밭뙈기 나마 제 때 밭 갈 남자 한 사람이 아쉬운 때, 북촌리 여성들은 바다에서 삶을 건져 올린 것이다. 땅에서는 기고 바다에서는 난다는 해녀 할머니는 수압에 두통은 달고 산다고 하시며 4.3 때 살아온 말을 주섬주섬하시다가 딱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 내 머리 아픈 게 역사라~


< 생이여>는 아주 조그마해서 사람보다 새들의 서식처가 되는 곳인가 보다. 하지만 어떤 여도 새보다 작지는 않을 것인데 저 그림 속의 여는 새가 바위를 덮고 있다. 이 구도 속에 화가의 시선이 들어있다. 강요배의 자연은 목가적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으로의 자연이고 우주 속의 자연이다. 사람은 그 속에 용해되어 버린다.


에술가는 우리가 늘 보고 있는 것을 사실은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자라고 했다. 강요배가 보는 자연은 대상물 자체의 본질을 깊고 넓게 천착하는 화가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 이다. 그러나 주장하지 않는다. 화가는 관객에게 슬그머니 문을 열어 놓을 뿐이다.

아무려나 내게 중요한 것은 ’ 생이여(새의 여)’를 ‘ 생이여!(oh! life) ’로 보게 했던 저 그림으로 내가 삶의 한 고비를 넘는데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생이들아, 먹이 찾아 날아드는 생이들아, 퍼덕거리는 날갯짓에 쟁강쟁강 부딪치는 은빛 조각들, 생명이 깃든 모든 것은 그렇게 눈부신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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