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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Mar 26. 2022

부모의 자식 된 도리

"똘아, 이게 뭔지 아냐. 도라지 달인 거란다. 이게 코로나에는 제일 좋단다. 자기 전에 한 숟갈씩 떠 먹어라잉."


엄마는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며칠을 끙끙 앓다가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 처음 한 일이 도라지를 달인 것이고 첫 외출이 남해에 있는 아들 집이다. 아들은 코로나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혹시 걸릴까 봐 본인 몸 회복하자마자 아들에게 왔다. 본인이 아픈 와중에 본인보다 아들을 생각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제발 좀 그러지 마시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부모는 부모의 역할이 있다. 상관 마라." 한다. 나도 부모가 되면 그럴까. 부모의 도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올해 똘이 네 안 바쁠 때 일본에 가서 외할아버지 퇴학 증명서를 좀 떼어 와야겠다. 보훈처에서 그것이 있어야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을 수 있단다. 엄마가 외할아버지랑 큰삼촌을 위해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단다."


일제강점기 때 외할아버지는 니혼대학교 법학부를 다녔는데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가 일본인 헌병을 때려 퇴학당했다. 그 후 한 직장에 자리잡지는 못하고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 강사를 전전하며 집에 월급 한 번 가져다준 적 없이 풍운아처럼 살았다고 한다. 동생들 가르치고 집안을 일으킨 건 큰 외삼촌이었다. 동생들 결혼할 때 집 한 채씩 모두 해주었고 나를 포함해 조카들 첫 대학 등록금은 모두 내주셨다. 크게 우러러봤던 큰외삼촌도 어느새 여든을 바라보고 있다. 큰외삼촌은 자식들 고생시켰다고 그렇게 미워했던 외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고 있다.


엄마는 나에게 웬만해선 부탁을 하지 않는다. 성격이 대쪽 같고 책임감이 강해 본인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 한다. 아마도 엄마는 국가보훈처며 독립운동 관련 연구소며 백방으로 알아봤을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일본에 가서 외할아버지 퇴학 사유가 적힌 퇴학 증명서를 발급받아 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본인이 혼자 갈 수 없으니 일본에 친구도 있는 아들이 가서 발급받아오길 바라는 것이다. 나도 나이 든 자식이 되면 그럴까. 자식의 도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가 바라는 것과 항상 어긋나게 살아왔기에 아직도 자식 된 도리는 한 번도 못했다. 늦었지만 도쿄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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