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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Oct 31. 2019

조직 문화 프로젝트를 하며 느낀 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지난 5개월 동안 바로고라는 근거리 물류 IT 플랫폼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조직문화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었다.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들기도 하고, 생활백서를 만들기도 하고, 위키를 만들기도 하고.. 초기에는 백 명 넘는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성장에 집중하느라 기본적인 문화조차 전혀 문서화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노션을 이용해 빠르게 필요한 문서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직원들을 만나기도 하고, 관계자를 찾아다니고, 주로 글을 쓰며 바쁘게 지냈다.


생활백서가 완성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바로고만의 특색 있는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뉴얼의 핵심인 '문화'에 대한 내용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초기에 있었던 바로고만의 문화가 많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조직문화에 관련된 바로컬처TF가 새롭게 생겨나고,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직원들에게 공지할 공지문부터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 문화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카피나 콘텐츠로 서포트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과연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에 투입된 인력이었는데, 내 주위에는 조직문화를 바꾼다는 것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순간순간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조직문화란 대표의 성향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전체가 바뀌는 것은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컬처TF가 생기고, 이전에는 혼자 고민했다면 이제는 함께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할 사람들이 생겼다. 알고 보니 나 외에도 조직문화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이 있었다. 특히 바로컬처TF에서 주로 함께 일하는 종일님은 무척 열정적이었다. 나보다 열정적인 사람을 발견하니 괜히 반가웠다. TF가 생긴지 이제 고작 세 달 정도 되었지만 그간 시행한 캠페인들, 매달 작은 미션을 주고 우수사원을 선정하는 바로미션이라던지, 익명으로 직원에게 솔직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든 바로박스라던지를 보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주 월요일에 바로토크530 시간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바로토크530은 매주 월요일 5:30에 로비에서 모여 30분 동안 직급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이다. 이전까지 직급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던 바로고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서 과연 많은 사람들이 올까, 잘 진행될까 궁금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고 온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게 했는데, 대표님의 술값에서부터 각 팀의 회식 문화까지 자유롭게 질문이 터져 나왔다.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을 받은 대표나 팀장도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의견을 받아들이고 대화했다.


바로토크530 현장 모습


물론 처음이라서 많이 서툴고, 참여자도 온오프라인 포함 고작 2-30명에 비롯했다(전 직원은 160명 정도다). 그래도 이 사건이 내게는 조금 감동적이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시간은 매주 돌아올 것이고, 다들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다.


내 고민이었던 '과연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는 어느새 '어떻게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에 대한 물음의 답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군가의 지속적인 애정과 노력이다. 너무 기대하지 않고 (기대가 큰만큼 빠르게 지치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은근하고 꾸준한 태도로 계속해나가는 것.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라고 하지만, 변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변할 수 있다. 다른 일보다 복잡하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다. 조직이나 문화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지레 '안된다'라고 실망하고 관둬버리는 게 아닐까.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지난 몇 달간 생각이 많이 바뀌어왔기에 언제 또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엔 그렇게 생각한다. 조직문화는 이해관계자도 많이 얽혀있고, 잘했다라는 것의 기준도 분명치 않아서 정말 어렵다고. 하지만 어려운만큼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최근 들어서는 '지속가능한 애정은 없다, 지속적인 애정만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요즈음에는 지속적인 애정을 갖고 끝끝내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어 보인다. 애정을 갖고 노력하는 바로컬처TF의 사람들이 때때로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 역시 애정을 갖고 무언가에 헌신하여 끝끝내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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