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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07. 2024

가리키면서 가르치는 것보다는

교육(敎育)은 가르치고 기르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은 '구분하여(가르고)' '깨끗이 하는(치는)' 행위일 수도 있고,

'구분하여(가르고)' '셈을 맞추는(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교육할 권리가 곧 권력이 되고

교육받을 의무가 권력에 따르는 일이 되는 것은

그것이 한 사람을 한쪽 편향으로 설정하는(가르는) 과정이 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르치는' 일이 '가리키는' 행위를 동반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가리게(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구별하여 고르게) 만드는' 행위는 곧

'가르고 치려는(가르치려는)'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교사(敎師)는 모르겠지만,

선생(先生)은 가르치는 사람이어서만도 안 되겠고,

가리키는 사람이어서만도 안 되겠다.

지시봉을 들고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교사보다

깊은 지식의 바다에 함께 빠져 헤엄치는 선생이 좋다.

아무렇게나, 아무 데나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교사보다

영법(泳法)을 가르치는 대신 어느 곳이든 있다고 말하는 선생이 좋다.


어쩌면 교육은 '가르치면서 기르는' 일이기보다

'함께 어울려 자라는 일(交育)'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선생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부족한 선생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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