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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17. 2024

길들이고 길들고

길이 잘 나 있는 물건을 쓰는 일은 즐겁다.

길이 잘 난 물건을 보면 길을 잘 낸 물건 주인을 대단히 여길 수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 물건을 사용했는지 알려주고

그 물건을 쓰는 일(work/job)에 얼마나 매진했는가를 알려준다.


'길을 낸다'라는 표현과 함께 '길들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또 어딘가에 익숙해지는 일을 두고 '길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물건이나 대상을 '길들일 때' '능동적인 주체'가 되고,

어떤 물건이나 대상에 '길들 때' 어쩐지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어떤 대상을 길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 대상이 꺼이 내가 원하는 길을 들여보내 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길들이고 애써도, 길들지 않는 대상이 얼마나 많은가.

길이 잘 든 대상은 그것을 대하는 그만의 방식(way)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반대

우리가 누군가에게 길들 때도 수동적이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정해진 매뉴얼에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드는 과정에서 순전한 희생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꺼이 어느 대상에 내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기꺼이 다른 방식이 틈입하도록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면,

그처럼 능동적이고 과감한 결단이 없다면 결코, 나는 어느 대상이나 환경에도 길들 수 없을 것이다.


문득,

나에게 길든 대상 앞에서 자신만만해하거나

내가 길든 대상 앞에서 의기소침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


어리숙한 손길을 받아들이면서 길들어 준 물건에, 어설픈 말과 행동에도 인내와 배려로 길들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해야 할 것만 같다.


더불어, 기꺼이 나를 비우고 나를 향해 밀려드는 새로운 대상에게 길을 내어 준, 길을 들인

스스로를 잊지 않고 칭찬해야 할 것만 같다.


왠지 그럴 것만 같다.


*『어린 왕자』의 여우를 생각하며

**한국어에 존재하는 두 '길'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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