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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05. 2024

고인 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계속 고여 있으면 결국 썩어 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변화를 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로 하는 말이고, 요즘처럼 자기 관리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서는 더욱 격언이 된다.


물론, 한 분야에서 아주 오랜 경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고인 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고인 물은 결국 썩고 마는 것처럼, 고인 물이라는 표현 자체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그 분야에 계속 머물고 있는 사람처럼 여기기도 한다. 여러 모로 물이 고이면 좋지 않다는 표현인 것이다.  


솔직히 인간만이 물이 고여서 썩는 것을 아쉬워한다. 인간 이외에 고등 동물들도 물이 고여 썩는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물들이 정말 지저분해 보이는, 파리가 들끓는 물도 할짝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이지 흐르는 물은 깨끗하다. 고인 우물을 마시기는 두렵지만,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어쩐지 깨끗해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이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물이 고이는 것이 아니라, 상류에 있는 사람이다).


인간 입장에서 벗어나 썩은 물을 생각해 보면, 미생물의 천국이다. 미생물은 인간의 체내에 들어왔을 때 여러 가지 탈을 일으킬 수 있지만, 생명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관점에서는 경이로움이다.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시작은 바로 그렇게 요란한 기후가 잠잠해진 후 고여있는 거대한 물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말이다.


물이 유속을 늦추거나 고인 상태로 존재하지 않으면 미생물은 존재하기 힘들다. 물이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속에서 생존할 존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이 멈추었을 때, 고였을 때, 그 고인 물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을 타고 먼지들이 내려앉을 때 비로소 그 물은 잘 썩을(살아날)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사실 시간이라는 물이다. 우리는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분초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썩지 않는 물이 되기 위해서 '분주'하다. 여러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바쁘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큰 만족을 얻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생활이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분초사회'는 시차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에 사는 내가 잠을 자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사는 그들이 잠을 자지 않으므로 깨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미국에 사는 그들이 잠을 자는 시간이라면 당연히 깨어서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할 것만 같다.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어느 창문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면, 불을 끄고 잠들기가 죄스럽고 수치스럽고 불안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경고하않는가. 과도한 즐거움으로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 지나친 성과주의에 자신을 내모는 것, 느린 사유 대신 빠른 검색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흐르는 물은 결코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자꾸 흐르려고만 하면, 멈추지 않으면, 멈추었다면 조금 더 오랜 시간 머물지 않으면 그때, 우리는 생명을 싹 틔울 수 없는 진짜 썩은 물이 되고 만다.


흐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흐르고 난 뒤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충분히 썩혀야 한다. 생명을 싹 틔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흘러야 한다. 무작정 흐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생성할 수 없다.


격정적인 흐름을 멈추고 고여 있기를 선택했을 때, 그 멈춤으로 비로소 새로운 생명(가능성)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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