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s are always be second.
'seconds'는 언제나 'second'이다. 두 번째들이 초 단위(순간)를 이룬다. 순간들은 언제나 두 번째이다.
이유는 무엇인가. 엉뚱한 상상을 한다.
많은 사람이 현재를 살라는 말에 공감한다. 과거를 향한 후회나 집착, 미래를 향한 불안을 버리고 현재를 즐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라는 말을 '초' 보다 큰 단위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정도가 비로소 '현재'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 '현재'는 곧바로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영원할 수 없는 현재.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멈춰 버린 오디오를 바라보며, 불과 몇 초 전의 여운을 떠올린다면, 그는 과거를 사는 것일까, 현재를 사는 것일까.
굳이 어려운 철학서를 탐독하지 않더라도, 현재는 언제나 과거일 뿐임은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표현이 되었다.
내가 마주한 '지금'은 곧장 첫 번째에서 두 번째(second)로 밀려난다. 붙들 수 없는 처음의 순간들. 그 처음의 순간들은 두 번째 순간으로, 세 번째 순간으로 차츰 밀려나 어느 순간 과거가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인 '초'는 언제나 뒤로만 물러나기에 '두 번째들(seconds)'이다. '정각'은 '한 순간'일 뿐이다. 내가 마주한 '정각'은 '일 초 뒤'로 밀려나고, '일 초 뒤로 밀려난 정각'은 다시 '일 초 뒤'로 밀려난다. 두 번째로 밀려난 자리에서 다시 두 번째로 밀려나는 순간들(seconds).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을까. 누적된 순간들(seconds)이 없다면, 내가 감히 현재를 살아낼 수 있을까. 과거를 잊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은 너무 거시적인 관점으로만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없다. 누적된 시간을 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비로소 삶의 토대가 된다.
현재를 사는 일은 지난 일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되 현재의 '나'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매 순간, 우리는 언제나 부정성의 존재가 된다. 곧장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과거'의 영광과 수치도, 성공과 실패도 모두 부정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새로운 가능성은 곧장 과거로 물러나 두 번째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진짜 방법이 아닐까, 순식간에(in seconds) 지나가는 현재를 살아내는, 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