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gpt가 있는데 뭐 하러 글쓰기를 배울까요?

by 정선생

글쓰기 시험을 위한 특강은 허무하다. 어떤 학생은 특강 한 번 들으면 내일 있을 시험에서 점수가 오르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글쓰기 예시를 보여주고 시험에 나올 만한 주제를 제시하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것을 찍음으로써 안정을 얻는 것일까. 그러나 글쓰기는 한 시도 안정적으로 지내지 않음으로써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와의 대화를 듣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시험 답안을 맞춰 보는 학생처럼, 유명 학원 강사의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면서 예상 문제와 답안을 작성해 보는 학생처럼, 내가 읽었던 책의 모범답안을 얻으려고 한다. 작가의 말은 또 하나의 정답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고, 누군가 자유롭게 내놓은 해석 앞에 "작가가 아니라고 그랬어요."라는 대답을 내놓게 만들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잘하고,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갖는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고집을 많은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작업이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집스럽게 자리 잡은 활자들을 기어코 내 편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그것은 돌멩이가 잔뜩 박힌 돌밭을 일궈 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책을 일궈내는 것이다.


학생들이 써서 낸 글들이 쌓여 있다. 나는 이 글을 기어코 일궈내야 한다. 굳이 들추지 않아도 좋을 돌멩이를 끄집어내야 한다. 굳이 흙먼지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마 핥을 수는 없지만 대강 훑어, 보기가 좋다고 말해야 한다. 다만 저쪽에 뭔가 보이는 것 같다고 암시해야 한다. 그것을 찾아내고 나아가 그것을 뽑아내고, 더 나아가 뽑아낸 자리를 잘 다져 놓을 수 있는가는 그의 몫이다. 그 땅은 내 땅이 아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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