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른'이라는 말이 새삼 조명받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어른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어른은 자기 생각을 강조하고 때로는 강요하면서 어린이를 말 그대로 어린(어리석은) 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젊은 사람에게 "어른! 어른!" 거리는 사람이 많다. 어른이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젊은이들이 원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어른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의 요청이 있을 때는 먼발치에서 지시만 하던 이들이, 정작 젊은이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어른거리며' 이래라저래라 말했기 때문이다. 간혹 밧줄을 던져주는 어른이 있었지만, 밧줄을 잡고 올라온 젊은이에게 돌아오는 말이란 결국 잔소리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대신 자신의 위치에 반듯이 앉아서 반드시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해 주는 어른을 젊은이는 꿈꿔 왔을 것이다. 은퇴한 판사의 지원자였던 한 어른의 이미지가 새삼 주목받은 이유는 자신이 제공한 도움으로 자신을 돋보이려 하지 않는, 젊은이의 성공에 자기 몫을 요구하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어른의 모습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어른'이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언제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정도의 실체만을 가질 때 비로소 어른다워질지 모른다. 어른거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이 보이다 말다 하다." "큰 무늬나 희미한 그림자 따위가 물결 지어 자꾸 움직이다."이다. 이 불명확함. 어른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들고, 세상의 규칙을 명확하게 만들려고 할 때 어른을 향한 젊은이의 분노도 커질 수 있다. '어른거림'을 버리는 순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찾아가고 싶은 어른이 아닌, 찾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어른거리는'(심지어 "어른!" 거리는) 귀찮은(말 그대로 귀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이 앞에서 어른거리지(또는 "어른" 거리지) 않고 어른다워진다는 일은 어렵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언제나 어른거리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내가 미워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지 않기 위해서, 지금 내가 마주한 갈림길이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