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종강

by 정선생

1년 하고도 한 학기를 더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2018년 이후 처음 만나는 한국 대학생. 책에서만 접했던 '요즘' 대학생을 마주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냉소 혹은 냉소를 넘어선 듯한 표정과 태도는 많은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교수자로서 많이 늙고 낡았음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대학의 본질과 기능에 관해서는 훔볼트의 베를린 대학의 시작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은 학문의 장이어야 한다는 믿음, 비판적인 사고와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로 그 조직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자동적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얻는 것에 만족하는 일. 행여 다른 이보다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조차도 편법이든 불법이든 융통성이든 이미 알려진 방법을 따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발표와 토론으로 가득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전공 시험이 다가오는 기간에는 발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미 중간 과제물에 관한 피드백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발표를 진행해서 한 번에 십 수 명씩 해결하면, 3주 안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찬성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사실 의견을 주지 않은 학생이 절반이었다. 그래서 결국 한 번에 8명씩 5주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다음에는 다른 의견이었다. 이번 학기는 대체공휴일로 화요일에 개강한 상황. 학생들은 자신의 기말시험이 목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난다고 했다. 월요일에 배정된 당신의 수업은 오후 3시에 있고, 자기 전공의 학생들은 월요일에 당신 수업 하나 때문에 학교에 온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기말시험을 목요일로 당겨서 치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은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수업 시간에 실시한다. 따라서 내 과목의 기말시험을 다른 날짜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공통교양이므로 다른 수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시험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이유를 들어 정중히 거절하였으나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교양 전담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고 답을 얻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수업은 우리 수업이지요."

기말시험 후 성적 평가와 함께 나는 강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나의 강의는 분명 좋지 않은 평가를 얻을 것이다. 내가 신나지 않은 수업인데 학생들이 신났을 리가 없다. 지난 학기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몇 학생이 수업 후 질문을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며 열의를 보인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진다. 나조차 이런 행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는데 싶다. 하기는 나는 성적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요즘 학생은 성적이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역시, 1806년에 "정치 권력에 제약받지 않는 교수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위키백과 '대학' 참고)라는 훔볼트의 설립 이념과 더불어 세워졌다던 베를린 대학교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김윤식 교수의 <살아있는 정신에게>를 애써 비판하며 요즘 대학생 입장에서 글을 써 보아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세대인 것이다. 20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은 변했다.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이다. 여전히 자유는 중요하지만 생계에 얽매인 현대인에게 자유는 삶의 기반이 될 수 없다. 취업(생업)을 향한 도정 위에 서 있는 대학생을 마주하는 교수자에게 자유란 없다. 매 순간이 존폐 위기인 지방 대학에서 교수자에게 자유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저 낡고 진 대학의 이미지를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자유를 향한 용기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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