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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리석음이 초인의 조건일까

김동식의 『악마대학교』(현대문학, 2025)

by 정선생

인간의 욕망을 대표하는 것이 돈과 사랑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돈과 사랑을 게임처럼 즐기게 되는 상황이 초래하는 인간성의 추락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진리처럼 여겨진다.


인생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은 어떤가.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끔 해 보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중학생이 되어야 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야 하고, 군대를 가야 하고... 그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과 실제로 그 과정을 재경험하고 이겨내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언젠가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나는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 시절 한국 사회에서 다시 입시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하고, 그 새로운 선택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해 왔다. 물론 새로운 선택이 새로운 미래를 불러와 새로운 절망과 실망을 안겨주는 내용까지도. 김동식의 악마대학교는 이처럼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준다.


니체를 인용하는 밀란 쿤데라도 영원한 회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이 영원히 회귀한다면 모든 행동과 사건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닐 것이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우연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할 운명의 굴레가 되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으로 요약된다.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살아보겠다는 각오. 이는 초인의 범접할 수 없는 의지이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한 결말을 반복하겠다는 나약한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읽힐 수도 있었던 것이다. 김동식은 후자의 것으로 니체를 읽었다.


결국 '나'가 '나'인 이상,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시 똑같은 현재로 돌아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절망적 전망. 김동식은 니체를 업어 침으로써 인간의 나약한 의지와 어리석은 욕망을 고발하고, 모든 성공과 좌절을 "너의 노력"과 "너의 의지"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회를 향한 비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식 등단을 거치지 않은 작가. 그래서 책날개에 매우 많은 책의 목록을 펼칠 수밖에 없는 작가의 모습은 그가 이 세상의 모순에 관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을 유경험자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회색인간」과 작가의 인터뷰 정도만 읽었을 뿐인 나에게, 두 번째로 접하는 그의 소설은 생각보다 싱거웠고, 생각대로 무거웠다. 모르지. 이 작가조차도 영원한 회귀에 갇혀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중은 아닐지. 우리, 아니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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