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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02. 2018

부모 마음에는 오직 자식만 살지

김형영, 「꽃구경—따뜻한 봄날」

1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서야 안다고 했다. 부모가 아니어도 간접경험을 통해 충분히 부모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짐작하는 것과 아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부모가 되었든 아직 되지 않았든, 부모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마중물 한 바가지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좋은 시 한 편 같은 것 말이다.


2

김형영의 시 「꽃구경—따뜻한 봄날」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시의 전개는 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아들에 의해 드러나는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깊은 감동을 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읽는 이가 부모가 된 자식이라면 감동은 더 할 것이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형영, 「꽃구경–따뜻한 봄날」 전문

꽃구경을 시켜드리려는 아들이 부모를 업는다. 업히는 부모 마음이야 편했을까만은, 업히는 것 정도는 아들에게 바라도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 놈의 아들이 어디를 가는지 자꾸만 멀리 간다. 아들 덕에 꽃구경도 좋다지만 어쩐지 걱정이 앞선다. 다 자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지도 모를 아들이, 행여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어머니는 말을 잃고 솔잎을 한움큼씩 땅에 뿌린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돌아갈 길을 표시한 것이다.


이 시를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모시는 아들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추상적으로는 고통스런 이승을 떠나 저승 가는 길을 모셔다 드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의 모습일 수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좋은 곳 간다고 말하며 데리고 가지만, 그 곳은 사실 좋은 곳이 아니다. 아무리 고통으로 가득한 이승이라도 저승보다 못할 리 없다. 아무리 중증치매환자라고 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다. 이러니 아들은 꽃구경이라는 거짓말을 해서야 겨우 데리고 나갈 수 있었을 터.


한참을 아들 등에 업혀 가고 있던 어머니는 뭔가를 직감한 듯 말이 없다. 아들은 어머니의 행동이 그저 이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등에 업힌 채 너무도 또렷하게 대답한다. "너 혼자 돌아갈 길이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봐 걱정이구나"라고.


3

뒤늦은 효도이든, 끝내 부모를 어떤 시설에 맡겨야만 하는 슬픔이든, 부모는 오직 자식 걱정 뿐이다. 나 하나쯤이야 편하든 불편하든 상관없지만, 자식만큼은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훗날 당신이 죽거든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태워달라는 말이, 그토록 야속하고 먹먹하게 들리는 이유. 끝내 가겠다고 했지만, 그 대답이 슬프게만 들리는 이유. 간단한 검사인 줄 알고 따라나섰다가, 병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그가 안타까운 이유.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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