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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01. 2018

둥글게 둥글게, 가볍게 가볍게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1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은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변화무쌍한 삶에 적응하며 끝내 살아남는 자가 결국 이기는 것이니 말이다.


2

끝까지 살아남는 자의 특징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가벼움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최고의 가치였을지 모를 '엄근진'은 변화에 맞서는 사람의 무기로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지조를 지키며 결국 목숨을 버린 사람을 충신으로서 높이 여긴다. 반대로 상황에 맞게 처신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간신 혹은 간웅이라며 깎아내리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를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좋다. 치밀한 계산으로 상황변화에 대처하며 연명하는 모습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하자. 반대로 아무런 계산도 없이 허허실실하며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을 가볍게 넘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그런 사람은 얼간이라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남겨둘 수 있다.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단단한 물건은 떨어지면 깨어지기 쉽다. 모가 있는 물건이라면 떨어지면서 모서리가 떨어져나가거나 뭉개질 것이다.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또한 너무 가벼워도 안 된다. 적당한 공기를 머금고 말랑말랑하고 둥근 공은 떨어졌을 때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둥글고 말랑말랑한 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공의 중심을 가득채운 구심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젠가 그 공이 보여줄 원심력의 위력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정확한 모양을 갖추고 현재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블럭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정으로 다양성과 다변성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단단한 블럭처럼 살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공처럼 통통 튀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는 아예 형상을 갖추지 않아야 할지도…?!


그러나 이 시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각진 모서리를 갖추지 못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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