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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12. 2018

내 안과 밖의 침묵

김명인, 「침묵」

1

시끌벅적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법 무거운 침묵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고막을 두드리는 파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독 그것에 귀기울인다. 귀기울인다고 해서 들리지 않는 그것은 스멀스멀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 '침묵'을 분명히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2

긴 골목길이 으스름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을 지켜본다
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배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꾸어 스스로의 길을 지우고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
그러고 보니 낮에는 언덕 위 아카시아 숲을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어둠 속이지만
아직도 나무가 제 우듬지를 세우려고 애쓰는지
침묵의 시간을 거스르는
이 물음이 지금의 풍경 안에서 생겨나듯
상상도 창 하나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
창의 부분 속으로 한 사람이
어둡게 걸어왔다 풍경 밖으로 사라지고
한동안 그쪽으로는
아무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은 필경 그런 것이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그 속에서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밖에서도 분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깊은 이미 지워졌지만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괜한 우울감을 느낄 때, 함께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서글프게 울음을 터뜨릴 때, "밥은 먹고 다니냐"는 텅 빈 인사를 듣고는 괜한 감동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침묵의 존재를 새삼 깨닫는다.


자신의 침묵을 깨뜨리는 누군가가 나타날 때, 누군가 떠난 후 홀로 남아 침묵의 외투를 걸칠 때, 그렇게 스치는 숱한 인연들로 인해 우리는 자신만의 침묵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것의 정체도 모르면서, 우리는 그것이 존재함을 믿는다. 그것은 분명 느낄 수 있는 감각이지만, 결코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은 나의 안에 있지만, 동시에 내 손이 닿지 않는 바깥에 있다.


3

계절이 바뀌고 내 주변의 상황도 바뀐다. 함께 했던 사람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이 잠깐 혹은 제법 긴 시간 동안 머무르기도 한다. 그들은 인연이지만 우연이다. 필연적인 것이 있다면, 그들이 나를 부르기 전에 존재했고, 그들이 나를 떠난 후에 존재할 '침묵', 그것만이 유일한 필연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침묵을 오늘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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