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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패드

스마트폰 시대에 더욱 그리워지는…

by 정선생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쉽게 메모를 할 수 있다. 링크를 통한 초공간적인 메모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펜'을 활용한 자유로운 드로잉이 가능한 제품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니 'AI'니 하는 시절인데도 매체의 형태는 종이와 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메모를 끄적이는 것에 익숙하지, 메모를 두드리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할 때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수업을 듣는 많은 학생들은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어서 메모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메모를 하는 매체는 달라졌지만 그 행위의 방식은 유사하다는 점에서 수첩과 메모지는 여전히 유용하다. 비록 그것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기는 어렵지만, 어차피 아이디어가 자본제가 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그것을 모조리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킹스맨>의 누구 말마따나 해킹 당할 위험도 적고 말이다.


아이디어의 초기형태는 간직하되, 그것을 구체화(상품화)시켰을 때에는 공유해도 무방할 듯하다. 어쩌면 그것이 비물질적 재산권을 지키는 방법이 될 것도 같고 말이다.


부산대학교 NC백화점에 영풍문고가 있다. 종이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스마트폰의 긍정성 덕분에 문자중독까지 생겨난 요즘이지만, 종이책과 메모지는 언제나 기분 좋은 감각을 선물한다.


아무튼 이런 핑계 때문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노트패드(레포트패드)를 장만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부산대학교 근처 백화점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가 구입하게 되었다. 기계식 키보드와 이 패드를 두고 고민했지만, 시끄럽게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공간이 언제나 확보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이것을 선택했다. 가격도 1/4이상 차이가 나고 말이다.


소설가 최명희는 만년필과 원고지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지난 여름 전주에 있는 그녀의 박물관에서 본 원고지들은 교정기호와 잘라 붙인 작은 종이들로 가득했다. 컴퓨터와 키보드로 쉽고 빠르게 그리고 많이 쓸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최명희가 했다는 말은 단호했다. 그녀는 많이 그리고 빨리 쓰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되묻고는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고 말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그저 써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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