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물건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라디오나 텔리비전에서 헤어진 연인이 준 값비싼 물건이나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인간의 유한성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듯하다(물론 예전에 사귀던 연인이 준 값비싼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꼭 추억 때문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서 내가 보여주는 오래된 물건은 안타깝게도(?) 지난 연인과의 추억을 담은 물건처럼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어머니께서 첫 돌에 마련해 주셨던 나의 첫 밥그릇이다.
나의 돌 밥그릇. 어머니께서 보관해 주신 나의 유일무이한 어릴적 물건이다. 지금은 찬장 안에 들어가 있고, 숟가락은 가끔 내 아들이 쓰기도 한다.나의 어머니는 쓰지 않는 물건을 간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반면 아버지는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편인데, 두 분의 성향이 참 안 맞구나 싶은 생각도 한다.
이른바 "막장드라마"라고 하는 TV 연속극에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으레 배냇저고리가 등장한다. 그 이유는 배냇저고리가 모성의 상징이기도 하고, 갓난아기 때만 잠깐 입고 마는 옷이라 대체불가능한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를 볼때마다 어머니는 나의 배냇저고리를 간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곤 하셨다. 당신은 그런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아마 돌 사진도 사진관에서 촬영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태어날 당시와 어릴 적의 우리집은 상당히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돌 밥그릇이다. 그것은 오직 나의 밥을 담는, 온전히 나의 생명만을 위한 그릇이다. 어머니는 그 옛날 당신의 젖가슴에서 나를 떼어놓고, 이 밥그릇으로 밥을 먹게 하셨을 것이다. 지금은 아기들의 그릇도 워낙 많아서 이것저것 사서 쓰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던 만큼 이 사소한 밥그릇이 지니는 가치도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나이가 제법 들고 나서도 이 밥그릇으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머니와 이 그릇을 두고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밥그릇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이제 나는 어머니만의 아들이기보다, 한 여자의 남편이고, 또 한 아이의 아빠도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 밥그릇을 아들의 돌상에 올려 주었었다.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의미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의 기억이 아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샘 해밍턴이 아들에게 금빛 잔 하나를 건네주는 모습을 봤을 때 괜한 감동을 느꼈었다. 그 잔은 자신이 어린시절에 쓰던 잔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바람은 내가 유한한 삶을 살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그라드는 겨울, 옛시절의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