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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18. 2018

왜 지방대 대학원에 갔나요?

가난한 시간강사 하려고 박사학위 받았나요?

다음 달에 진로탐색세미나라는 수업에서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강연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왜 굳이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더 강조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그것을 더욱 구체화 한다면, 서울대학교 박사도 아니고 굳이 울산대학교 박사를 따려고 고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서 "현재도 울산대학교 말고는 시간강사 자리를 더 구하지도 못한 가난한 처지인데, 당신은 자신의 선택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선택할 때 보통 미래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린다. 계산을 완료한 후 확신이 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워 왔다. 그런데 그 확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확신인가?


내가 생각하고 또 믿는 바는 "이 길을 걸어 가면 반드시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확신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될 뿐더러, 그런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마음이 그 지점에 도달하게 된 순간에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 가기로 결정할 때 필요한 확신은, 그 도착지가 어떤 곳이든 일단 가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일 것이다. 그것은 니체가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삶이 어떠한 결과에 다다르든 다시 한 번 더 살아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세와 같은 것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정해진 미래라는 것은 누구든 적절한 시기에 결국 죽게 된다는 것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후회가 없다고(혹은 후회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확신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내가 지방대학의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 달에 많아야 2백만원도 못 벌고, 심지어 방학 중에는 수입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도 그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돈을 위해서 나의 욕망을 억누르지는 않았다는 대견함, 그리고 내가 가 보고 싶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늘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아내가 있다.


내 강의를 듣게 될 10여명의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고민이 많은 이유를 아는가?"라고.


그리고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건 결코 알 수 없는 성공 여부에 대한 확신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의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길은 뒤돌아보는 순간 후회를 안겨 준다. 따라서 지금 걸어가고 싶고, 가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면 일단 그 길을 가야한다. 왜? 그 길은 적어도 당신이 열망하던 것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간 기억은 확정된 미래로서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안겨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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