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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l 30. 2018

비관적인 성격

비관적 행복을 누리다

긍정적인 것이 미덕인 시대다. 부정적인 것은 매끄러운 진행을 방해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과거에 얽매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나는 비관적인 성격이다.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고 내일도 모자라 죽음 이후까지 생각하며 우울해한다. 시험을 치면 떨어질 생각부터 하고, 사람을 만나면 헤어질 생각을 시작한다.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는 했지만, 대부분그야말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최악생각하다보면 확실히 우울해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악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최악을 생각하는 이유는 나의 노력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당위적인 전망을 거부하려는 방법론이다.


부정적으로 살다보니 나는 참으로 행복해졌다. 노력하더라도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노력의 결과가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실패한다면 "역시 내 예상대로 였군"이라며 욕을 섞어 낙담하면 그만이다. 엄청난 성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온다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최악은 아니구나"라며 안도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식으로 얻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그렇지만 진짜 행복이라는 이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너무 큰 불행이 될 것만 같다.


공기 중 산소의 농도는 21%에 불과하다. 질소가 78% 정도라고 한다. 산소 100%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숨을 쉬며 생명을 유지한다.


삶도 마찬가지. 행복 100%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공기 중 산소의 비율보다, 삶 속의 행복이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5%? 1%? 아니면 순간적으로 생성되는 감정일까?


대부분의 삶은 고통, 고생, 고난, 고비 등의 고[苦]로 채워져 있다. 이것의 비율은 질소만큼 많거나, 심지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완벽한 행복만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행복을 영원히 붙들지 못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많은 것에 시선이 머무르니까 말이다.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삶을 가득 채운 고[苦]의 무게와 크기에 집중하며 그것의 위력을 실감해 보자. 항상 고[苦]와 마주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살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 왜냐하면, 5% 혹은 1%, 혹은 찰나의 행복이 우리를 숨쉬도록 만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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