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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Feb 04. 2019

소심 혹은 소신

어릴 적. 나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에도 나를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같은 동네에 있는 학교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고집은 좋은 것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규칙은 잘 따랐다. 그래서 표창장도 많이 받는 모범생이었다. 그렇다고 우등생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고,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과목, 그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것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었고, 그것은 곧 친구와 선배들과 잦은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상대방의 의견은 그저 듣기만(hear)했을 뿐, 듣지는(listen)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나는 소신대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고, 또 끝까지 경청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나는 내 말을 하기 위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상대방의 말소리가 그쳤을 때, 소심해 보이던 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어쩌면 '소심함'과 '소신 있음'은 한 끗 차이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자신 있게 다가가는 것은 '대범' 혹은 '능동적'이라는 지극히 남성적인 긍정성으로 평가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힘들어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은 이른바 여성적인 부정성으로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믿고 있다. 가볍게 팔랑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붙임성 좋은 듯 살아가는 것보다, 소심하게 자기 자신하고만 겨우 친밀한 사람들이야말로 소신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또 하나, 나의 '과강'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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