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out THINGs

고추장+밥

by 정선생

어릴 적, 아버지는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시곤 했다. 어머니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반찬이 있는 날에도 그랬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이해가 안 됐고, 심지어 불만스럽기까지 했다. 아버지 건강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추장의 짙은 색깔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군대에 있을 때, 선임들은 먹을 반찬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나에게 취사반에 들어가서 고추장과 '맛기름'을 퍼오라고 했다. 규율로 따지면 하면 안 되는 일임에도 선임이 무서웠기에 그대로 따랐다. 선임들은 열심히 내가 퍼온 고추장을 밥에 비벼 먹었다. '짬'이 안 되는 나는 언감생심이었다.


선임이 되었을 때 나도 고추장과 맛기름에 밥을 자주 비벼 먹었다. 삶은 달걀이 나오는 날이면 특히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고 생각했다. 취사반에서 만드는 어떠한 반찬보다, 고추장에 비빈 밥이 맛있었다.

삶은 달걀에 고추장과 참기름 참깨를 뿌려 비빈 밥.

달걀을 삶은 날이면, 나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깨를 뿌려 비빈 밥을 먹는다. 맛있을 것도 없고, 맛없을 것도 없는 밥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찾던 고추장, 선임들이 그토록 찾던 고추장. 그래서 그토록 싫어했던 고추장을 밥에 비벼 맛있게도 먹는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고, 또 어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없이 어린 어른, 아들보다 나을 것 없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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