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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01. 2020

생일 상을 치우면서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국은 젖이 잘 돌게 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생일 주인공이 미역국을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엄마의 젖을 먹을 수 없으니, 그것의 상징으로서 미역국을 먹는 것일까.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울음을 달래던 엄마의 사랑을, 젖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엄마의 정성을, 미역국으로 대신하려는 것인가.


아버지는 사춘기 즈음부터 너희 생일에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엄마라고 했다. 엄마가 너희를 낳고 기르는 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생각한다면,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은 엄마이고, 생일상을 받아야 할 사람도 엄마라고 했다. 그 의미를 그때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괜히 낯이 뜨거워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미역국이 우리 전통에서 한 사람의 탄생과 관련한 상징물이라면, 아버지 말처럼 나를 세상에 낳아 준 엄마를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태어난 날 미역국을 대접받았던 사람이 엄마였고, 고통스러울 만큼 반복되는 식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젖을 물린 사람도 엄마였다. 당신의 자식이 결혼해 손주를 안겨드렸음에도 여전히 많은 것을 챙겨 주려는 엄마다. 그러니 미역국을 대접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엄마다.


생일 하루 전날, 나는 엄마에게 귀한 미역국과 찰밥을 선물 받았다. 고봉으로 쌓아 올린 찰밥은 당신 자식의 앞날에 부정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이고, 미역국은 말라버린 젖을 대신하여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려는 사랑일 터이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는 모두 가라고 하면서 할머니만 찾는 손주 때문에 쉬지도 못하는 엄마.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맛있게 비워내고 깨끗하게 설거지해 정리하는 것뿐이다. 오랜만에 배가 많이 부른 날이다. 영양학적으로는 따질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가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새로 태어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깨끗이 치우면서 철든 척해보려고 해도, 서른일곱 나에게는 아직 어머니는 없고 엄마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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