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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6월 1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떠올랐던

by 정선생

어제,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이었던 것 같다)에서 남자들의 축구+군대 이야기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좀 과장해서 요약하면, 남자들은 축구와 군대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하지만, 여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흥미도 없고 때로는 불쾌(그날 방송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땀 냄새가 떠오른다는 표현이 나왔다)할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축구가 아닌 족구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였고, 그가 학점이나 취업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족구를 했던 이유가 다름 아닌 ‘재미있어서’였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음악이 나간 이후 DJ 배철수는 여자도 축구를 좋아할 수 있다고 말했고, 여자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일반화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남자(들)의 축구 이야기’, 특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이유가 여자들이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 문외한이라거나’, 그들의 ‘여성스러움’으로 인해 ‘남성다움’을 거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이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그 남자들이 사실은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겠다.

우리가 어떤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할 때에는 상대방과 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지만 ‘군대’ 경험은 대한민국에서는 남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으므로, 당연히 그 주제로, 심지어 여자와 대화를 만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남자(들)은 자신 앞에 있는 여자(들)이 ‘일방적 청자’가 되기를 요청(강요)하면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는 자신이 상당한 ‘매력남’이 되었다는 ‘남자들의 흔한 착각’으로 뿌듯해 할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이처럼 일방적인 흐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곳이 통제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군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정당한 군사 기밀을 제외한 부당한 사건 사고조차도 군대 바깥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었다. 사실, 상당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지금조차도,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쉽사리 바깥에서 알 수 없다(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두고 벌어진 뜨거운(?) 논쟁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이 된다). 그러다보니,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거기다 축구까지 한 이야기는 그들만의 ‘허풍’이 되기 십상이다. 자신을 ‘전쟁영웅’처럼 꾸며대는 이야기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다양한 관점에서 즐기는 여자들에게는 따분하고 때로는 불쾌하고 무례하기까지 할 수 있다.

사실, 어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다루었던 ‘남자들의 군대+축구 이야기’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봤다. ‘상징적 남성성’이 우리 사회를 구조화하던 방식, ‘상징적 남성성’에 따라 성장한 남성들의 ‘관계 맺기 방식’과 ‘자아를 구성하는 방식’들에 관한 상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국방의 의무를 지니는 형태상의 남성과 그 의무에서 원천적으로는 배제된 형태상 여성 사이의 허구적 우열을, 군대 이야기는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군대라는 ‘남성성의 세계’에서, 다른 남자와 대결하여 당당하게 승리한 자신을 드러내며, 앞에 있는 여자의 마음을 훔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로서는 건장하고 힘이 센, 그래서 다소 폭력적이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가 많다고는 믿을 수 없다. 차라리, 세상의 모든 싸움을 멈추고 모두가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그런 ‘새로운 남성’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껏 자녀에게 다가가 대화하려고 했지만 결국, 으름장만 놓고 마는, 퇴직 후 말벗 하나 없이 집안에서 소외되어 가는 아버지(들)의 모습. 그 모습은 어쩌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자신을 영웅화한 남자들의 말로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불안에 떨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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