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생 Jun 02. 2021

육아 천재는 없다

  여러 매체에서 ‘육아 천재’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육아를 잘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돌봄 과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적인 상황을 당황하지 않고 척척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불편한 것은 내가 단순히 ‘프로불편러’이기 때문일까?

  천재(天才)는 말 그대로 하늘이 준 재주를 가리킨다. 타고난 재능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 말이 지닌 폭력성에는 주목하지 못하는 듯하다.

  어떤 사람이 그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을 때, “그는 저 일을 좋아한다.” 혹은 “그는 그 일이 적성에 맞다.”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복사천재’, ‘청소천재’, ‘요리천재’, ‘청소천재’, ‘운전천재’와 같은 표현으로 ‘경의’(?)를 나타낸다.


  이 단어가 육아천재라는 표현일 때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남편이 집안에서 육아를 ‘분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요즘임에도, 여전히 가정에서 육아 및 가사를 ‘부담’하는 비율은 여성이 더 높다고 한다. 그만큼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이유에서 가사와 육아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맞벌이 가정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에서 남성과 여성을 대우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고열이 발생해 급히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때 아이의 아빠와 엄마 모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격차가 적지 않다. 결국 돈을 더 많이 벌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큰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가 회사에서 조퇴하고 아이를 보살피러 와야 한다.

  이런 가정이 성급하고 심지어 지나친 일반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삶이다. 아이의 엄마인 그녀도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고, 또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도 최고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수준으로 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는다.


  자, 이제 이런 여성을 두고 누군가 ‘육아천재’라는 말을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천재를 희생하면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천재는 육아에 있지 않고, 그녀가 지금까지 그녀의 부모에게 지지를 받으며 해 왔던 공부나 연습, 혹은 그녀의 부모나 주변에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 노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아이를 잘 돌보고 아이에게 언제나 미소를 보이며 응대하는 그녀에게, “어머, 육아천재시군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심각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주먹으로 때리는 폭력보다 무서운 말로 마음을 때리고, 할퀴는 폭력을 말이다.


이 세상 누구도 육아천재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만난 수많은 타인의 어머니,
그리고 내 아이의 엄마인 아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탈-남성’을 시도하다가는 ‘탈 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