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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ug 03. 2017

영웅적이라고 할 만큼 어리석은 한 남자에 대한 기억

기형도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1. 그 남자의 사정


    대학 3학년 때, 나는 어떤 후배에게서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년의 그 남자는 자신의 지갑 속에 젊은 시절 첫사랑의 사진을 넣고 다녔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을 간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남자는 그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공연하게 꺼내 보이곤 했는데,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가정이 있는 중년 남자가, 지갑 속에 다른 여인의 사진을 간직한다는 것은 일종의 ‘외도’였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지갑 속에 한 여인의 사진을 넣고 다녔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그 사랑을 모두 잊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2. 애써 쿨한 척 하지만, 사실은


    스무 살 즈음, 이문세의 <옛사랑>을 처음 들었다. 잔잔한 선율에 이렇다 할 절정도 갖추지 않은 노래였지만, 듣고 있던 내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부분이 있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 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가 그것이다. 이 부분이 놀라웠던 이유는 화자가 보여주는 ‘초연함’ 요즘 말로 하면 ‘쿨’한 태도 때문이었다. 현재로 넘어온 과거의 기억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을 억지로 떨쳐 버리려 하지도 않는 저 ‘초연함’ 혹은 ‘쿨’함 말이다.


     과거의 기억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미 그것은 지나간 것에 불과하고, 현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마 그 남자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남자에게 자신의 지갑 속에 있던 첫사랑의 사진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 한 장의 종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남자의 생각이나, <옛사랑>에 등장하는 화자의 심정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내면에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남자의 아내가 그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을까. 만약 자신의 태도를 계속해서 당당하게 주장했다면 결말은 비극적이었을 수도 있다. 파국에 치달을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달려가는 융통성 없고 어리석은 영웅의 결말처럼 말이다.


    소위 근대인이 누리는 사랑은 마음속에 요동치는 수많은 사랑의 대상을 억누르고, 내가 선택한 단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나와 연인의 세계와 일반적인 세계를 양분하여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의 소통 코드로써 둘만의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땅히 기대하는 요인인 것이다.


    사실 <옛사랑>이라는 노래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의 옛사랑을 떠올리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장면이 나타난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 속 주인공은 여전히 홀로인 것 같다. 그렇지만 자신의 옛사랑에 대한 감정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다. 후배들에게 전해 들었던 그 남자 역시, ‘남들도 모르게’ 그 사진을 간직하고 바라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지갑 속 사진이 소중한 개인의 추억으로서 그나마 떳떳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기억은 언제나 ‘현재’, 화석이 아닌 ‘화신’


    고백하건대, 필자는 당시 그 남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인 듯하다. 필자의 가치관으로는 몇몇 사람에게 동시에 사랑을 느끼게 되는 마음속 사태라는 것이 어쩌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 사태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어떤 사람을 선택할지를 분명히 했을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한 하나의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으며, 그 사랑을 축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자신의 지갑 속에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먼 과거의 여인을 간직하고 다녔다. 아니 그것을 고이 꺼내어 사람들 앞에 내 보이게 되었다. 그의 어리석음은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기형도,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전문


    ‘어떤 먼지도’ 푸른 종이의 색깔 자체를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기억은 언제나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은 ‘생각나는’ 것이고, ‘그리운’ 것이다. 아무리 과거의 사실일망정, 이미 생각나는 순간, 그리운 순간 철저히 현재가 되어 버린다. 생각났던 기억과 그리웠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연인들이 남자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연적으로 다투고 마는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현재성’ 때문일 것이다. <건축학개론>의 수지는 뭇 남자들의 첫사랑의 ‘화석’이 아니라, 스크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첫사랑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억 속 그 남자는 어리석었다. 그의 어리석음은 자신에게는 소중한 그 추억(追憶)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보편적이지 않은 추억(醜憶)에 불과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언젠가 영웅의 속성은 비범함에 있고, 자신의 비범함이 비극적 종말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달려가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자의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영웅. 혹시라도 그가 자신의 추억에 자신감이 있었다고 하면, 그의 행동이 이해될 수 있을까. 아마 억지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앞서 말한 고리타분한 영웅의 비참한 최후만이 있을 뿐이다. 중년의 사내로서 그는 알아야 했다. ‘슈퍼맨’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클라크’가 아니면 안 되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추억은 ‘남들도 모르게’ 간직되어야만, 그나마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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