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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ug 02. 2017

상처[傷處]를 허락하면서 상처[相處]를 허락하기

강성은의 <내 꿈속의 벌목공> & 황혜경의 <카테고리>

1.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라는 제목

     

  어느 작가는 자신의 책 제목을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만큼, 그의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같았는지는 알 수 없다. 공감하는 사람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독후감 같은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나는 이 책의 제목만을 살피려고 한다.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라는 이 제목은 씹을수록 맛이 나는 좋은 제목이다.


  ‘상처는 부딪히고 맞닿아 이지러진 흔적을 가리킨다. 상처가 어떤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생긴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상처 없이 대상과 만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그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루어졌을 때에 가능하다. 그 대상의 모양새에 맞춰 나의 손이 움직이고, 감싸 쥘 수 있을 때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충분히 그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서투른 손놀림으로 인해 나와 대상 모두에게 상처가 생긴다.


2. 누군가의 부재 증명에서 누군가의 현존으로-상처[傷處]에서 상처[相處]로


  우리들은 모두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다. 그 껍데기 속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의 이름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여린 마음’, ‘들키기 싫은 약점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존심은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즉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내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의 모습에도 상처가 남게 된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본능이다.


  자존심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다. 혼자서 살아가면, 상처받는 말과 행동을 경험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만큼이나 홀로 있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이라도 배제할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주고받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뜻이다. 서로의 말과 행동이 모두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저마다 고유한 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차이를 경험한다. 차이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사람이건, 자기 자신에게만 빠져 사는 사람이건, 모두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 상처는 우리들이 누군가와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려고 했고, 누군가와 손을 맞잡으려고 했다. 물론 모든 만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려 했다. 이 만남의 증거들이 바로 상처, 서로서로 부딪혀 이지러진 자리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한다. 기대는 타인을 끊임없이 가지치기한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던 상대에게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이 보인다. 그 부분만 잘라내면 완벽해질 것만 같다는 생각에 가위질을 하지만, 이내 반대편이 비뚤게 보인다. 그렇게 반복해서 가위질을 하다 보면, 상대방은 사라진다. 그리고 나의 기대만이 더욱더 왕성하게 자라난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눈 쌓인 날도 어제도 그는 열심히 나무들을 쓰러뜨렸지만 이내 자신의 등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는 나무들 이 거대한 톱이 원하는 것은 저 나무들이 아닐지도 몰라 그는 처음으로 톱이 두려워졌다 그는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다녔지만 톱을 멀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벌목이 끝나려면 내가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는 번쩍이는 은빛 날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그었다 스칠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묘하고 아름다운 소리 그는 자신의 몸을 더 세게 톱질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톱이 이토록 쓸쓸한 말을 하다니 이토록 무서운 말을 하다니

강성은 시인, 「내 꿈속의 벌목공」 부분


  어쩌면 우리들 모두 자신의 꿈속에 벌목공 하나쯤은 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잘라내기도 하고, 허튼소리처럼 들리는 말도 싹둑 잘라버린다. 나의 계획에 어긋나는 상대의 계획들을 다듬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잘라내고 베어낼수록 더 많은 나무(기대)들이 솟아오른다. 시에서 벌목공은 자신의 몸에 톱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톱질은 아무런 아픔도 주지 않는다. 다만 쓸쓸한 말무서운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쓸쓸함과 무서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타인에게 상처 입히기가 아닌, 자신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위대한 용기가 아니었을까.


  반복하자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싶어 한다. 나 혼자 타인의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앉을 수는 없다.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는 것,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에 똑같이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의 가지를 부러뜨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의 굵은 줄기를 베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톱질을 거두어 나를 톱질하는 것이고, 그것은 너를 받아들임으로써 나를 확장시키기 위한 배려와 같다.


나는 카테고리에 발목을 붙이고 싶어 합니다 당신과 나라는 고리
서로의 가슴에 가장 날 선 칼로 자신의 아픔을 본 후
지워지지 않을 정직을 새겨 최후의 붉은 신념으로 삼을 수 있는 당신과 나

 황혜경 시인, 「카테고리」 부분


  사귐이란,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가슴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내 가슴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나의 기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아로새기는 작업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새겨진 자신의 아픔을 본 후에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감히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것을 청할 수 있다. 오래도록 나의 삶을 함께할 소중한 당신에게 건네는 붉은 신념은 상처의 붉은 핏자국에서만 가능하다.


  상처는 자신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흔적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가 나의 기대에 스스로 주는 상처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나의 답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처,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편안히 자리 잡을 수 있다.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서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정착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부재 증명으로서의 상처[傷處]가 아닌, 서로의 마음에 똑같이 자리 잡을 줄 수 있는 것[相處]. 그것이 우리가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상처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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